'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2건

  1. 2009.11.27 마쯔다 RX-8 (Mazda RX-8) 48
  2. 2009.11.25 2012 (2012) 6
  3. 2009.11.11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38
  4. 2009.11.06 분닥 세인트 (The Boondock Saints) 2
Car
posted by 미까 2009. 11. 27. 16:44

마쯔다 RX-8 (Mazda RX-8)

사람에게는 누구나 드림카가 있다. 때로는 손 끝조차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세상의 존재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조금만 노력하면 내 것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드림카도 존재한다.

오늘 필자가 리뷰하고 싶은 차량은 바로 필자에게 있어 현실적인 드림카가 되었고,

실제로 그 드림이 실현되었던 아주 뜻 깊은 녀석이다.

세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저주받은 걸작, 바로 마쯔다의 RX-8 되겠다.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나머지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버린 RX-8>

사실 필자의 최초의 드림카는 페라리 F40이었다.

1980년대 탄생한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능과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기에 필자가 홀딱 반했던 녀석이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페라리 F40을 위에서 바라보면 바디라인이 마치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아무튼 페라리 특유의 시뻘건 컬러와 매혹적인 바디,

그리고 압도적인 성능은 드림카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였다.

그러다가 당시에도 몇 억을 육박하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이상적인 드림카로만 존재하였기에, 보다 현실적인 드림카를 찾던 나머지

2003년형 포드 머스탱 GT가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었다.

기존의 투박했던 머스탱의 모습을 버리고 현대적이고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변신하고,

4,800cc라는 어마어마한 심장을 가지고 심금을 울리는 소리로

단지 4,000만 원대의 가격으로 손짓을 했던 머스탱 GT.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GT가 정식으로도,

그레이로도 수입이 되지 않아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국내에도 어엿하게 GT가 돌아다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필자가 근무하던 미군부대.

이 곳에는 자신이 직접 들여온 미군들이 자신의 애마를 타고 다녔는데,

그 중 2003년형 머스탱 GT가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필자는 간접체험만으로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것.

그런데, 이 현실적인 드림카가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더랬다.

바로 게임. 니드포 스피드라는 매우 유명한 레이싱 게임을 좋아라하는 필자로서는,

당시 새롭게 나온 시리즈를 접하고나서 RX-8이라는 차를 알게 되었다.

게임 초반부터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저질스러운 성능을 자랑하던 RX-8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차는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한번에 사로잡은 그 외관은

게임 상의 그 어떤 머신보다도 단연 눈에 띄었다.

<이 정도의 디자인 쎈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디자인으로 치면 페라리 급>

RX-8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이 차를 실제로 단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디자인에 극찬을 가한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아있었다면

두 손을 치켜세우고 극찬을 하지 않았을까?

디자인에 대해 평해보자. 전체적인 모습은 쿠페의 형태이다.

앞은 날렵하고 뒤는 튼실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곡선이 아주 부드럽게 아우러져 있다.

헤드램프와 에어컨덕터, 범퍼, 보닛 등 전체적인 앞모습은

마치 페라리에서나 보던 날렵하고 매끄러운 그것이다.

언뜻 보면 상어 대가리처럼 생기기도 하였는데,

어디를 어떻게 봐도 일단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사이드라인으로 넘어가면, 앞과 뒤 휀더가 와이드바디를 연상케 할 정도로 튀어나와 있다.

사실 이 차는 전체적으로 폭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쿠페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좌석의 폭을 좁혀버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디가 넓어보인다.

사이드미러를 접으나 안 접으나 폭은 동일하다.

그래서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서 주차장 티켓을 빼거나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뺄 때 다른 차보다 팔을 더 뻗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뒤쪽으로 넘어가보자.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이 뒷태이다.

다른 차들을 리뷰하면서 필자가 엉덩이를 중요시한다고 많이 어필하였는데,

RX-8은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엉덩이 중 하나이다.

살짝 치솟아오른 듯한 엉덩이와 두툼한 범퍼,

거기에다가 감각적으로 색을 입힌 테일램프까지.

여기에 살짝 스포일러를 얹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태가 나온다.

<밸런스의 최적화라는 것이 너무 잘 어울리는 차체>

앞이 삐족하고, 뒤에서 높게 치솟아오르는 형상은 시보레 콜벳과 쌍벽을 이루는 멋진 조화이다.

게다가 사이드 휀더 스트레이크를 액세서리로 장착해주면 정말 상어의 아가미 같은 느낌이 풍겨서,

전체적으로 앞으로 돌진하는 상어의 느낌이 역력하다.

필자가 RX-8의 디자인에 대해서 극찬하는 바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말로 어딜가도 이 차를 보는 사람들은 예쁘다는 감탄사를 남발한다.

심지어 어떤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이 차를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자기 딸래미 사줘야겠다고 어디서 파냐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마쯔다는 사실 일본에서도 메이저 자동차제조사는 아니다.

딱히 자동차의 종류가 성능이 타사에 비해 나은 것은 없다.

그래도 타사에 비해 훌륭한 점은 바로 디자인.

모든 차종이 하나의 디자인 컨셉을 가져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흐름이다.

RX-8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어서 공기의 흐름을 타듯이 매끄럽게 만들어졌는데,

마쯔다의 일반 승용차도 전부 비슷한 형상을 띠고 있다.

특히 마쯔다의 중형 세단인 마쯔다6 RX-8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뭇 비슷하다.

RX-8의 장점은 비단 디자인뿐만은 아니다.

디자인에서 시도한 혁명은 바로 컨셉의 혁명으로도 이어졌다.

사실 이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뭐냐고?

RX-8은 스포츠카의 형태와 성능을 추구하지만,

편의성과 사용성에 있어서는 지극히 세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쿠페의 형체로 어떻게 세단을 추구했냐고?

일명 크로스오버 스포츠카로도 불리는 RX-8의 개념은,

고성능 스포츠카이면서 4인 가족이 불편함 없이 탈 수 있는

전형적인 가족레저형 차량인 것이다.

실 일본의 여러 고성능 스포츠카도 4인 이상 태울 수 있도록

4도어를 탑재한 유명한 차들이 존재한다.

미쯔비시 랜서 에볼루션이나 스바루 임프레자 같은 차량이 엉뚱하게도 4도어이다.

하지만 그네들은 적어도 쿠페의 형태는 아니다.

모양은 세단스럽지만 성능만 괴물인 것이다.

<이렇게 문 열리는 차 봤나? 못 봤으면 말을 마러~~>

하지만 RX-8은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4도어 세단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언뜻 보아도 도어가 2개뿐이다. 그런데 실은 4도어가 맞다.

자세히보면 B필러와 C필러 사이에 문 모양의 금이 보인다.

하지만 손잡이는 없다. 그럼 어떻게 여나?

바로 일명 자유형 도어라고 불리우는 도어 시스템을 채택하여

뒷문은 반대로 열리게 한 것이다.

, 앞문을 먼저 열고 안쪽에서 손잡이를 당겨 뒷 바깥쪽으로 뒷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 뒷좌석에도 사람이 불편함없이 탈 수 있고,

더불어 아주 묘한 상황을 연출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도어시스템은 사실 아주 오래전에 고급 승용차에서 채택하였던 것으로,

현재는 롤스로이스 팬텀에서 채택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그만큼 실제 사용자가 탑승하기에는 이러한 방식이 더 편하다는 의미일지도.

뒷좌석 얘기가 나왔으니, 늘 쿠페에서 빠지지 않는 불만이 뒷좌석의 넉넉함 문제다.

이미 투스카니나 제네시스 쿠페 등 보편적인 쿠페를 접해본 유저라면

뒷좌석은 괜히 만들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려와 달리 RX-8은 의외로 넉넉한 공간을 자랑한다.

신장이 180cm되는 남성이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이 그저 앉을 수 있다는 것.

이유는 뒷좌석이 전체적으로 안쪽으로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세미버킷시트 형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몸이 시트 안에 착 감기는 느낌이다.

이 덕에 RX-8 4인 가족도 불편함없이 장시간 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꼼지락거리기는 불편하다)

, 그럼 이제는 성능을 논하기에 앞서 실제 운전의 느낌을 접해보자.

시동을 켜보자. 어랏? 처음부터 아주 심하게 엔진음이 울린다.

부릉부릉 소리가 아니라 에에에엥~소리에 가깝다.

게다가 RPM은 무려 3,000을 치고 있다. 고장인가?

아니다. RX-8의 특징인 로터리 엔진 때문이다.

로터리 엔진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설명하고 일단 느낌만 적겠다.

<마치 박차고 나갈 듯이 솟아오른 엉덩이가 나를 유혹하는 것 같지 않은가?>

시동을 켜면 처음부터 심하게 앵앵거리기 때문에 소음이나 진동이 거슬릴 수도 있다.

로터리 엔진은 예열이 필수이기 때문에 일단 RPM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

어느 정도 예열이 되었다고 느껴졌을 때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넣으면 차가 덜컥거린다.

필자는 수동 6단 미션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오토미션보다는 진동이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저회전에서의 클러치 감도가 상당히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조절을 못 하면 클러치를 갉아먹거나 시동이 꺼져버린다.

이걸 잘 못하면 일명 푸닥거리는 현상이 발생해서 차가 뒤뚱뒤뚱거린다.

조금 탄력을 받아서 서서히 2, 3단을 올리면서 속도를 내본다.

어느덧 100km 6단 기어까지 넣었다. 그런데 RPM은 무려 3,000을 넘어섰다.

다른 일반 6단 기어 차라면 100km 5단을 걸거나 6단을 걸어도 2,000rpm 이하이다.

하지만 RX-8은 주구장창 고rpm이다. 이는 역시 로터리엔진의 특성 때문이다.

엑셀의 리스폰스는 랜서 에볼루션에 비해 다소 약한 느낌이지만,

조금이라도 밟아주면 확실히 앞으로 튀어나가는 느낌이 강하다.

저회전에서의 토크는 약한 편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쭉쭉 밟아주지 않으면 밋밋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일단 로터리 엔진의 특성상 엑셀을 조금만 밟아도 rpm은 거침없이 올라가고,

그 힘이 바퀴에 전달된다. 4,000rpm을 넘어서면

드디어 본연의 힘이 터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초반 100km까지 가속할 때는 조금 답답할 수도 있지만,

120km를 넘어서면 갑자기 주욱 나가는 느낌이 든다.

<RX-8의 극한의 성능은 바로 코너링에서 나온다. 코너에서 치고나가는 것이 예술>

RX-8의 성능에서 가장 우수한 부분은 바로 핸들링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핸들링이기 때문에,

달리기 성능이 약해도 레이싱 게임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RX-8은 차체가 낮고 가벼우면서 동시에 50:50의 완벽한 무게배분을 실현했기 때문에

핸들링에 있어서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실제로 급회전에서도 어지간해서는 미끄러지지 않고 잽싸게 빠져나간다.

특히 차와 차 사이를 치고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의 다른 메이커의 스포츠카들보다 우위에 섰다는 평도 있다.

사실 스티어링휠을 움직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들어간다.

무겁다는 의미이다.

핸들 자체를 돌리는 데 있어서는 힘이 좀 들어가지만,

차체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게다가 핸들이 무겁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성도 뛰어나다.

필자는 실제로 RX-8을 이용해서 영종도에 위치한

자그마한 레이싱 트랙을 테스트해본 적이 있다.

그 트랙은 전체 코스의 90%가 급회전코스라서 드래깅보다는 코너링에 초점을 둔 코스인데,

RX-8은 단 한번의 미끄러짐 없이 빠른 시간내에 랩 타임을 끊은 적이 있다.

참고로 필자는 당시 관련 운전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만큼 RX-8이 보여주는 성능이 우수하다는 의미 아닐까.

엔진이 뿜어내는 힘은 238마력. 물론 앞서 말한 대로

rpm에서 제대로 된 힘이 터져나오지만, 일단 달리는 느낌에서는 만족스럽다.

스포츠카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에서의 주행안전성도 매우 뛰어나다.

정숙성도 달리면 달릴수록 세단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저속에서는 로터리 엔진 특유의 소음과 진동에 시달려야 하지만,

고속에서는 가장 안정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일본의 스포츠카들에 비하면 직빨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드래깅이나 스프린터에서는 다소 약한 부분이 없지 않다.

브레이크는 순정 브레이크이지만, 성능은 가히 압권이다.

RX-8의 브레이크 성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어서 굳이 튜닝을 하지 않더라도

안정된 제동능력을 보여준다.

연비는 일반적으로 안전운전을 하면 8.0km/L 수준의 나쁘지 않은 연비를 보여준다.

하지만 과격한 드라이빙은 4~6km/L의 극악의 연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주구장창 100~110km로 정속운행을 하면 연비는 무려 12km/L까지 치솟는다.

편차가 너무 심한 연비일텐데, 그 이유는 역시 또한 로터리 엔진의 특징 때문이다.

<역시 일본차 답다는 느낌이 드는 깔끔하고 정돈된 엔진룸. 빈 공간이 없을 정도이다>

, 이제 그토록 묘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로터리 엔진에 대해 알아보자.

RX-8은 오토 4단일 경우 210마력, 수동 6단일 경우

최대 250마력까지 힘을 내는 꽤나 고성능의 엔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엔진의 배기량이 1,300cc에 불과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300cc면 그야말로 아반떼나 프라이드보다도 못한 배기량이다.

경차 수준을 겨우 넘어섰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250마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로터리 엔진으로 명명된 마쯔다만의 엔진 메커니즘이 바로 그 비밀인데,

사실 이 엔진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반켈이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 엔진인데,

일반 피스톤 엔진과 달리 가운데에서 회전을 이루는 로터를 이용해 출력을 얻는 엔진이다.

이 엔진의 특징은 작은 배기량에 비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어서,

초창기에는 비행기 엔진 등으로 많이 쓰여졌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마쯔다가 반켈엔진을 자동차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 이전에도 반켈엔진을 자동차에 적용한 사례는 몇몇 있었으나,

효율성과 내구성 문제로 피스톤 엔진에 밀려났던 터이다.

하지만 마쯔다는 계속되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자동차에 적합한 반켈 엔진을 만들었고,

회전을 이루는 로터의 특성을 따서 로터리 엔진으로 공식화한다.

1965년 최초로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Cosmo가 세상에 등장하고,

이후 기술적인 발전을 통해 로터리 엔진의 새 역사를 쓰게 된 머신,

바로 RX-7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Cosmo에 탑재된 엔진은 10A 로터리 엔진인데, 여기서 10A 1,000cc를 의미한다.

그리고 초기 RX-7에는 1,200cc 12A 엔진이 탑재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서야 전설로 불리어지는 13B엔진을 탑재하면서 이후

로터리 엔진은 1,300cc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로터리 엔진 단면도. 가운데의 세모가 바로 핵심인 로터이다>

RX-7은 마쯔다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자동차 역사에서도 전설적인 머신인데,

초창기의 12A 엔진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빠른 차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으며,

트윈터보를 탑재한 13B 엔진은 르망 24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무려 100회에 가까운 레이싱대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로터리 엔진은 그 압도적 성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내구성과 연료효율성이었다.

아무리 배기량이 작더라도 피스톤에 비해 상대적으로 회전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그만큼 연료가 퍼부어지는 주기가 짧아짐으로써 연료소모가 상당하였고,

특히 회전을 하는 로터 주위의 Apex Seal이라는 일종의 차단막이 회전을 하면 할수록

마모되는 성질이 있어서 내구성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로터리 엔진은 타이밍 벨트 갈아줄 때 엔진도 같이 갈아줘야 하는

초엽기 시츄에이션을 선보였고, 그 덕에 RX-7은 엔진을 말아먹는 차량으로 인식되었다.

또 하나의 단점은 바로 엄청난 소음과 진동.

작은 엔진룸에서 고속의 회전이 발생하다 보니 피스톤 엔진에 비해 진동이 심했고,

특히 Apex Seal이 마모되어 갈수록 소음이 심해지면서 동시에

연비도 극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RX-7은 엄청 시끄럽고 엄청 덜컹거리면서 엄청 기름을 많이 먹는 차 중 하나이다.

게다가 6km 정도 타면 엔진 로터를 교환해줘야 하기 때문에 유지비도 상당하다.

로터리 엔진의 매커니즘은 이미 말했듯이

로터의 고회전에 의한 추진력을 얻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보통 로터리엔진은 실린더의 용적 때문에 650cc를 넘지 않고 있다.

현재의 13B 엔진은 650cc 로터 2개를 붙여서 만든 엔진이라서

총 용적 1,300cc를 보인다.

<계기판에 나와있는 RPM의 숫자를 보라. 10,000RPM이 보이는가!!!!>

로터는 삼각형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타원형의 실린더 내부를 회전하면서

로터의 3개의 꼭지점이 실린더 내부 표면에 막을 형성하면서

4개의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각각 동시에 흡입/압축/폭발/배기가 이루어진다.

재밌는 점은 1개의 실린더에 스파크 플러그가 2개씩 붙는데,

1개는 leading plug, 다른 1개는 trailing plug라고 해서,

먼저 leading에서 점화를 시켜 폭발을 일으키고,

이후 다시 trailing이 점화를 해서 2차 폭발을 일으킨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정말로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는데,

무려 10,000rpm까지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수동 6단 모델의 경우 레드라인이 9,000rpm부터 적용된다.

RX-8에 탑재된 13B 엔진은 RX-7 13B 엔진이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여 탄생한 르네시스 엔진으로 불리운다.

르네시스 엔진은 로터리 엔진의 또 다른 혁명이라 불리울 정도로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로 엔진의 수명을 극단적으로 높여서

일단 리빌트로 불리우는 로터 교환이 필요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연비도 4~5km/L 수준이었던 것을 9km/L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소음과 진동도 상당히 많이 개선하였다.

이 덕분에 과거 RX-7이 전적으로 매니아들을 위한 과격한 머신이었다면,

RX-8은 보다 현실세계로 걸어들어온 타협의 머신으로서 소비자들을 어필할 수 있었다.

물론 RX-7의 환상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RX-8을 스포츠카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단순히 성능이 많이 저하된 부분에서 빚어진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RX-8 RX-7이 탑재했던 트윈터보를 과감히 버렸다.

이유는 내구성과 정숙성에 많은 애로사항을 꽃피운다는 것.

그래서 RX-8은 위에서 언급한 크로스오버 스포츠카로서의 컨셉을 내세우기 위해

성능보다는 접근성에 초점을 맞추느라 트윈 터보를 내친 것이다.

<타 엔진에 비해 너무나도 간단하고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교체비용은 저렴하다>

로터리 엔진은 관리에 있어서도 상당히 까다롭다.

예열과 후열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지속적인 로터의 고회전이 필요하므로

단기간 찔끔찔끔 운전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엔진에 부담만 주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악명높았던 것이 바로 엔진블로우 현상.

이는 실린더 내부에 기름이 유입되어서 엔진이 먹통이 되는 현상으로,

현재는 스파크 플러그를 개선하여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로터리 엔진의 오명으로도 여전히 유명하다.

엔진오일도 편식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수첨가제는 절대 넣지 말아야 하고, 5W20 혹은 5W30의 규정된 오일을 사용해야 한다.

고회전에 좋다는 40~50 수준의 점도를 가진 오일을 넣었다가는

극악의 연비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로터리 엔진은 특성상 엔진 오일을 조금씩 태우면서 작동한다.

이는 Apex Seal의 성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결국 운행 중 수시로 엔진오일 양을 체크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

기름도 좋은 것만 골라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취급하는 고급유가 이 녀석의 안정된 먹이이다.

일반유를 넣어도 차가 움직이지만 엔진에 무리를 줄 수도 있고,

연비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푸닥거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늘 언제나 잘못된 관리로 엔진블로우 등이 발생하여 리빌트를 해야 하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너의 입장에서는 늘 신경 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토록 관리도 까다롭고 독특하기 짝이 없는 로터리 엔진이지만,

거침없이 올라가는 고회전의 매력과 독특한 엔진음,

그리고 전 세계에서 마쯔다가 유일하다는 희소성 때문에

나름 매니아적인 특성이 있기도 하다.

<감각적인 투톤칼라와 생각보다 넓고 쾌적한 뒷 공간>

이번에는 편의장치에 대해 논해보자.

RX-8이 이미 크로스오버 스포츠카라는 독특한 컨셉을 자랑한다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편의성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문득 들지 않는가?

결론적으로는 맞다.

시트는 세미버킷 시트를 장착하고 있는데,

옵션이기는 하지만 앞좌석은 전동 및 열선 시트가 가능하다.

시트는 몸을 착 감싸주기 때문에 매우 편안하고,

특히 머리 뒷통수를 콕콕 찌르는 보통의 시트와 달리

뒤쪽으로 들어간 형상이라 머리도 편하다.

ECM 룸미러를 장착하였고, 국내에서는 할 수 없는 주차장 리모트컨트롤 시스템도 있다.

, 차 안에서 내 집의 주차장 문을 버튼 하나로 자동으로 열고 받을 수 있는 기능이다.

네비게이션은 모델에 따라 탑재형이 있는데,

주로 일본 내수용이 네비게이션을 탑재하고 있다.

센터페시아 위쪽 대시보드에 서랍열리듯이 열리는 형태이다.

센터페시아를 보면 디자인이 상당히 수려하다.

아니, 전체적으로 인테리어가 다른 일본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마쯔다가 일본차스럽지 않은 대표적인 증거인데,

사실 마쯔다는 예부터 유럽식 스타일을 많이 추구한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부 디자인도 신경쓰지만, 내부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오디오는 최상급인 GT모델인 경우 BOSS 오디오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훌륭한 음색은 아니다.

아무래도 스피커만 좋은 것 같다 쓰고,

음질에 대한 공학적 메커니즘은 고려하지 않은 듯 하다.

CD 6개가 들어가지만, MP3 플레이어 기능은 없다.

따라서 오로지 오디오 CD만 들어야 한다. 테이프도 안 들어가고,

AUX 단자도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오른쪽의 작두같이 생긴 브레이크 레버와짤라먹은 듯한 미션 스틱이 재미있다>

에어백은 보조석 에어백, 사이드커튼 에어백까지 모두 장착되어 있어

안전성에서 우수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DSC라 불리는 차체자세제어시스템도 탑재해 있어 미끄럼 사고시 안전을 지켜준다.

DSC 시스템은 평소에도 끄고 다닐 수 있는데,

버튼을 한번만 누르면 DSC OFF라고 계기가 뜨지만

미끄럼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ON이 되고,

버튼을 7초 정도 누르면 완전 OFF가 되어서 계기에 미끄럼경고등까지 뜬다.

이 때는 DSC가 어떠한 경우에도 재작동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출력에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에 치고나가는 느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알려진 소문에 의하면 연비도 좀 더 좋아진다고 한다.

사이드 미러는 상당히 자그마한 편이라 시야각이 넓지 않다.

나름 멋부린다고 만든 것 같은데, 일단 사용성에서는 쥐약이다.

그리고 수출용 모델에서는 전자동 미러가 아니라서 손으로 직접 구부려야 한다.

그런데 전자동이 사실 필요없는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접으나 펴나 폭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내수용은 전자동 미러가 존재한다.

헤드램프는 GT모델의 경우 기본적으로 HID를 장착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북미버전의 경우 DRL이라 불리우는 기능이 있어서,

평상시에도 늘 헤드 램프가 켜져 있다. 이 것은 북미의 흐린 날씨 때문에

늘 전조등을 작동시키는 효과를 주기 위함이다.

계기판은 3개의 구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우 감각적이다.

가운데에 RPM 게이지가 있고, 속도계는 디지털로 표시된다.

보통 속도계의 숫자로 그 차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다는데,

일단 RX-8은 MAX값이 안보이니 가늠은 불가.

참고로 제원 상으로는 240km가 최고 속도이다.

계기판에는 재미있게도 오일압력 게이지가 있다.

보통 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게이지인데,

이것은 RX-8이 얼마나 엔진오일에 민감한지를 알 수 있는 증거.

오일이 모자르거나 과다하면 압력에 이상이 생겨 바로 엔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에

이렇게 오일압력 게이지를 따로 표시한 것이다.

<문을 활짝 열면 가운데 걸릴 것이 없어서 혼자 드러누워서 해변가를 바라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타이어는 투어링과 GT모델의 경우 18인치 알로이휠을 장착하고 있고,

노멀 모델은 16인치 휠을 장착하고 있다. 뽀대는 역시 18인치가 작살인데,

단점으로 휠의 무게가 꽤 나간다는 것.

미션은 자동의 경우 4, 5, 6단이 존재하고, 수동의 경우 5, 6단이 존재한다.

수동 6단이 마력은 가장 우수하지만, 연비는 오히려 오토 6단이 더 우수하다.

일반적으로 매뉴얼이 오토미션보다 연비가 더 좋은데 비해,

RX-8은 희한하게도 오토미션이 아주 조금 더 우수한 것으로 나와있다.

로터리 엔진의 특성 때문인지도.

참고로 오토미션은 패달 시프트를 지원하기 때문에 수동 운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작동시키기에는 손의 위치가 잘 안 맞아서 어렵다는 후문.

RX-8은 스포츠카임에도 불구하고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지원한다.

40km 이상이면 크루즈 컨트롤 작동이 가능하고,

버튼만으로 가속과 감속을 조절할 수 있다.

로터리 엔진의 특성상 고속으로 정속 주행을 하면 연비가 허벌나게 좋아지는데,

이에 한 몫 하는 기능이 바로 크루즈 컨트롤이다.

뻥 뚫린 고속도로와 크루즈 컨트롤이 만나게 되면

12~13km/L의 연비로도 주행이 가능하다.

RX-8은 전형적인 전방엔진 후륜구동(FR) 방식 차량이다.

그래서 기어스틱의 위치에서부터 뒷좌석까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콘솔이 있다.

다른 후륜구동에서도 찾아보기 힘든데,

워낙 차체를 낮게 만들고 내부를 타이트하게 가져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

덕분에 오로지 4명만 탈 수 있는 제한을 가져왔다.

트렁크는 생각보다 꽤 넓다. 단지 문제는 입구가 좁다는 것.

그래서 큰 물건은 넣고 빼는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꽃을 피운다.

트렁크에는 스페어 타이어는 들어있지 않다.

공간은 마련해 놓았지만 옵션이라고 한다.

이는 차량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제조사의 술수였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스페어타이어가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대신 펑크가 날 경우 이를 땜질할 수 있는 기구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심은 된다.

<페이스 리프트된 2009년형 RX-8. 개인적으로는 기존 모델이 더 멋있다고 느껴진다>

무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RX-8은 무게에도 극도로 민감하다.

로터리 엔진의 특성이라고 또 핑계를 대보지만,

어쨌든 로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늘 동일한 회전수와 마력을 뿜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를 보장하기 위해 그만큼 기름을 많이 소모한다.

피스톤 엔진의 경우 힘이 딸리면 좀 부들부들 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로터리 엔진은 그런 현상이 없다. 언제나 보장된 출력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기름을 더 쓰게 되는 야누스의 얼굴 같은 엔진이다.

그래서 가급적 쓸데없는 물건은 최소화할수록 로터리 엔진에는 더 이득인 것이다.

2003년에 최초로 등장한 RX-8은 지금은 페이스리프트 되어서

2009년형이 새롭게 등장한 상태이다.

전체적인 외관의 변화는 없지만, 범퍼와 휠이 조금 바뀌었고,

내부 인터리어도 조금 바뀌었다.

최신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서 르네시스 엔진의 경우도 몇 가지 기술개량을 통해

연비와 출력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AUX는 물론 i-Pod 단자도 지원하고,

테일 램프가 LED로 장식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마쯔다의 공식 튜닝메이커인 마쯔다스피드 튜닝파츠를 장착한 RX-8. 정말 감동적인 포스다>

사실 RX-8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많은 필자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이 글에 담을 수는 없다.

지금도 RX-8은 미국의 RX-8 오너 전용 포럼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들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물건이다.

심지어 필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묘한 증상으로 고심하고 있는 처지이다.

물론 이는 국내에 마쯔다가 정식으로 들어와 있지도 않고,

메이저 회사가 아니라서 정비할 수 있는 곳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로터리 엔진은 생소한 개념이라 어지간해서는 다른데 가보시라고 사양하는 형편이다.

지금도 국내의 유저들 사이에서도 많은 얘기들이 오고가고 있지만,

그만큼 까다로운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그 본연의 매력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터리 엔진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도 로터리 엔진에 대한 개량이 끝없이 연구되고 있는 가운데,

마쯔다에서는 수소연료를 이용한 로터리 엔진을 상용화단계까지 온 상태이다.

RX-8을 모델로 테스트를 했다고 하는데, 1~2년 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엑스맨> 1편에서 등장한 엑스맨 버전 RX-8. 울버린과 동료들이 타고 도망치는 용도로 나온다>

그리고 로터리 엔진은 2개의 로터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공식이 존재한다.

1개의 로터는 650cc인데 이 자체로는 약 80마력을 낸다.

2개의 로터는 1,300cc로, 약 210마력을 낸다.

그렇다면 3개의 로터를 써서 2,000cc를 만들면 얼마의 마력이 나올까?

쉽게 생각하면 약 350마력이라고 하겠지만, 무려 약 500마력까지 나온다.

실제로 3개의 로터를 탑재한 튜닝된 RX-8이 몇 개 존재하는데,

미국의 어느 드래그 레이싱에서 3로터 RX-8이

정말 초절정 스피드로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돌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3로터가 기술적으로 한계라고 하는데,

일부 튜닝업체에서는 4로터까지 테스트를 했고 이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결론은 무려 1,100마력!! 4로터로는 자동차를 가동할 수는 없고, 단지 엔진 테스트만 가능했는데,

800마력을 넘어가면서부터 엔진외부에서 불꽃이 타오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로터리 엔진의 잠재성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필자에게 드림카로서 최초로 꿈을 이루어 준 RX-8.

놀랍도록 혁신적이고도 희소적이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걸작.

국내에 30여 대 밖에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듣보잡 차량이

필자에게 주는 의미는 단순한 자가용 그 이상이다.

어쩌면 필자가 추구하는 인생관하고도 사뭇 비슷하게 보이는 RX-8의 존재의미가

필자를 빠지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오늘도 RX-8을 이렇게 말한다.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라고.

posted by 미까 2009. 11. 25. 11:25

2012 (2012)

예부터 지구의 종말은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신화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지구의 종말은

우리네 삶과 결코 먼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왔다.

고대의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던지 간에,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구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어왔고,

그것은 당시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을

순식간에 멸종시킬 정도의 가공할만한 변화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서인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인류도 언젠가는 떼죽음을 당하겠거니 하고 본능적으로 느껴왔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언젠가는 들어맞을 수 밖에 없는

어거지식 예언을 뿌렸던 바, 그것이 바로 인류의 종말이었다.

<힘들게 산 꼭대기에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스님의 슬픈 뒷모습이 압권>

20세기 말에는 세기말적 현상때문인지 종말에 대한 이슈가 시끄러웠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의 시기가 마침 도래했던 것이다.

게다가 종교계에서도 휴거가 올 것이라는 말이 성행하면서

집단자살 유행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별 일 없다는 듯이 살아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종말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는 매스컴까지 아주 대놓고 떠들어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종말론계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급 매니아인 한 사나이가

종말을 시각화한 또 한편의 자신의 작품을 내놓게 된다.

바로 영화 <2012>이다.

숫자로 제목을 써서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고 의문을 품는 분들을 위해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주구장창 읊어나가겠다.

<지구 최후의 시각을 잘못 예측하여 나름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애드리언 박사>

때는 2009. 지질학계의 유망주 애드리언 헬슬리(치웨텔 에지오포) 박사는

동료의 부름을 받고 인도의 한 지역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는 지구의 내부운동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되었다는 것.

바로 최근에 심각해진 태양의 대폭발로 인해 중성미자가 다량으로 지구로 뻗쳐오면서

지구 내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본능적으로 지구가 곧 과열해서 폭발하고 말겠구나 하고 감 잡는 애드리언.

애드리언은 즉시 미국으로 돌아와 환경부장관인 앤하우저(올리버 플랫)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에 지구의 위기가 대통령(대니 글로버)에게까지 보고되고,

세계의 수장들은 그 이후 지구의 종말이 될지도 모를 이 사실을

비밀리에 대응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12.

최근들어 지진이 심해진 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소설작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

이혼한 후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선다.

얼떨결에 링컨 리무진을 끌고 가서 아이들과 자연 탐방을 하게 된 잭슨.

잭슨은 자신의 딸 릴리(모갠 릴리)와 아들 노아(리아 제임스)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외부통제가 되어있는 것.

그래도 배째라 마인드로 기어이 쳐들어가는 세 사람은,

예전에 호수였던 곳이 홀라당 말라버린 비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치는 군인들.

졸지에 군인들에게 잡혀간 잭슨과 아이들은,

마침 그곳을 담당하고 있던 애드리언 박사와 만나게 된다.

애드리언 박사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지구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에 구축된 비밀기지에 앤하우저 장관의 명으로 급파되었던 터였다.

애드리언 박사는 마침 잭슨을 알아보고

자신이 잭슨의 저서의 애독자라고 소개하면서 급친한척 한다.

이 때문에 아무 탈 없이 풀려나게 되는 잭슨.

<통제구역 강제침입이라는 강수를 두었다가 결국 팔자 피게되는 잭슨>

그런데 공원을 나서자마자 이번에는 웬 미치광이 히피족이 달려들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는다.

잭슨은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그 미치광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겔겔대면서 사라진다.

그날 밤, 공원 근처에서 야영을 하던 잭슨과 자식들은,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어색한 가족분위기를 풀지 못한 채 어색함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잭슨을 그 소리를 따라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낮에 보았던 미치광이 남자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용을 들어보니, 잭슨이 줄곧 들어왔던 찰리 프로스트(우디 해럴슨)라는 라디오 방송가가

바로 그 미치광이였음을 알게 된다.

찰리는 이제 지구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면서

그 모든 사실을 정부가 숨기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사나이였던 것.

평소 찰리의 애청자였던 잭슨은 이내 아는 척 하고,

찰리는 잭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부의 음모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지구는 곧 종말할 것이고, 정부는 이미 종말에 대비해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이에 잭슨은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떠나버린다.

한편 캘리포니아에서는 잭슨의 전 부인인 케이트(아만다 피트)

새 남편 고든(톰 맥카시)과 장 보러 나왔다가

땅이 갈라지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케이트는 급하게 아이들을 부르고,

잭슨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서 고잉 홈한다.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그저 몸 하나만 달고 도망가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미스테리>

다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잭슨은

부업으로 하고 있던 운전기사 알바를 뛰기 위해 또다시 출동한다.

유리 카보프(즐라고 뷰리치)라고 불리우는 러시아 대부호의 운전기사로 고용되어

그의 두 쌍둥이 아들들을 집으로 보내주는 역할이었던 것.

그런데 평소 싸가지없기로 유명한 두 아이때문에 진절머리가 났던 잭슨은

아이들을 집이 아닌 공항으로 데려다주고는 이제 일을 때려칠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 때 비행기에 오르던 쌍둥이 중 하나가

너희들은 곧 죽을꺼야.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멀리 날아갈거니까라고 잭슨에게 말한다.

이에 잭슨은 갑자기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 얘기를 상기하며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계속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여론 흘리기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사태를 직감한 잭슨은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었고,

무언가 곧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믿은 잭슨은

급하게 케이트에게 전화해 빨리 도망갈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하여간 타이밍도 기가 막혀서 땅이 갈라지고

집이 폭삭 무너지기 직전에 케이트와 아이들,

그리고 사이 안 좋은 고든까지 구출하게 된 잭슨.

링컨 리무진으로 웨딩카가 아닌 구출목적으로 활용하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캘리포니아 지대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그러다가 더 이상 땅에 붙어있다가는 살 가망이 없다고 보고

공항으로 달려가 미리 마련한 작은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무너져 내리는 활주로를 겨우 이륙하여 목숨을 건진다.

한편 지구가 본격적으로 지각변동의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비밀 플랜을 가동하고,

비밀리에 구축한 비밀기지로 우주선 탑승 대상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신호한다.

대부분이 10억 유로라는 거금을 지불한 대부호였던지라,

그 중에는 유리도 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비밀기지로 향한다.

<결국 날고 기는 놈들만 살아남게 되는 시츄에이션>

어쨌든 겨우 목숨을 건져 비행기로 연명하고 있던 잭슨 일행은,

찰리가 말했던 우주선을 타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가서 장소를 확인하려고 한다.

옐로우스톤에 다시 도착하지만, 그의 트럭에는 라디오 방송만 나올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죽기살기로 찾아본 결과

찰리는 어느새 옐로우스톤 산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지구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화산폭발까지 일으키는 옐로우스톤.

그 광경에 취한 찰리는 그대로 죽기를 바란다며 살기를 거부하고,

우주선의 위치를 알리는 지도는 알아서 찾으라고 한다.

일단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산재와 불덩어리를 피해 살아야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죽기살기로 또 도망치는 잭슨.

겨우겨우 지도까지 얻어서 비행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옐로우스톤을 탈출한다.

그런데 이게 웬 병 주고 약 주기? 지도를 보니 우주선의 위치가 중국이었던 것.

경비행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판국인지라

잭슨은 더 큰 비행기가 필요하다며 인근 공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공항에는 유리가 비행기가 없다고 못 가고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

마침 몰려오는 옐로우스톤 화산폭발의 후폭풍 때문에 어떻게든 탈출이 시급했던 일행들은,

유리의 충실한 조수 사샤가 급히 마련한 러시아제 대형 수송기를 구해서

일단 죽기살기로 또 도망친다.

결국 사샤와 고든의 콤비플레이로

겨우겨우 무너지는 땅덩어리를 뒤로 하고 살게 된 일행들.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탈출극이 벌어진다. 리무진이 슈퍼카로 돌변하는 그 장면!!!>

식구가 늘어난 잭슨 일행은 이제 수송기에서 안심을 하며 중국까지 갈 것을 꿈꾼다.

그런데 문제는 연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

그래서 중간에 하와이에도 들려보려고 하지만 이미 하와이도 쑥대밭이 되어있던 터라,

그야말로 이제는 갈 데까지 가서 바다에 비상착륙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제 워싱톤도 무사하지 않게 되자 대통령은 자신의 딸 로라(탠디 뉴튼)에게

지구 종말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종말에 대해 알고 있던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비밀리에 살해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를 알게 된 애드리언은 일반 시민들도 알 권리가 있다면서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낸다.

이에 삘받은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을 결심하고,

유일한 탈출구였던 에어포스원에 자기 대신 자신의 딸과 애드리언을 태운 뒤

쓰나미에 무너지는 워싱톤과 함께 장렬히 희생한다.

위기의 순간을 함께 넘기며 이제 어느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잭슨과 가족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 첫 번째로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것.

원래 중국까지 가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질 예정이었으나.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 중국대륙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면서

다행히 비행기가 중국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결국 히말라야 고원지대의 어느 지역에 불시착해야 하는 일행들은,

수송기 안에 있던 유리의 수집품 중 가장 튼튼하다는 벤틀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비행기에서 떨어져나와 무사히 착륙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기수를 놓지 않았던 미남 조수 사샤는

결국 비행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되고 만다.

<등에 업은잭슨의 딸이 마치 외계인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고원지대에서 발이 묶인 일행은

때마침 지나가던 중국군의 헬기에 발견되어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들은 우주선의 티켓만 가지고 있는 유리와 그의 아들들만 태운 채 버리고 떠나간다.

졸지에 제대로 버림받게 된 일행들.

결국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어디로든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운이 억수로 좋았는지, 마침 자신의 가족들을 태우고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티벳 승려 니마(오스릭 차우)를 만나 그들과 함께 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들만 몰래 우주선에 태우려던 니마의 형 텐진(친 한)

잭슨 일행을 거부하고, 니마의 어머니의 설득에 못 이겨

겨우 잭슨 일행까지 태우기로 한다.

한편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잡고 있던 인류의 비밀기지가 드디어 그 정체를 드러내고,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아크가 건조되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우주선이라고 알려졌던 기체는

대홍수에서도 살아남도록 설계된 거대한 폐쇄형 배였던 것.

예정보다 앞당겨서 건조하느라 일부 아크만 가동할 수 있게 된 상황이어서,

결국 예정되었던 인원을 모두 태우지 못하고 도망가게 된 실정.

일단 자기 살기 바쁜 앤하우저 장관은 각국의 수장들을 설득하여

서둘러 아크 발진 준비를 하게 하고,

밖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태워야 한다는 인도주의를 설파하는 애드리언은

앤하우저와 한 판 겨루기를 한다.

그런데 역시 정의가 승리하는 법인지라,

애드리언의 눈물어린 연설에 감동먹은 각국의 수장들은

남은 인원을 모두 아크에 초과승차시키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텐진의 도움으로 표 없이

몰래 개구멍을 통해 아크에 탑승하려던 잭슨이 사고를 치고 만다.

아크의 입구가 닫히는 과정에서 톱니바퀴에 기계공구를 떨어뜨려

그만 작동불가로 만들어버린 것. 그런 줄도 모르고 나살자 죽어라 도망치던 잭슨.

이제 히말라야 고원지대에도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아크는 드디어 쓰나미의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물이 쓸려들어오는 것.

하필 뚜껑이 안 닫히면 엔진에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전형적인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아크에 탄 사람들을 모두 수장시킬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이에 애드리언은 또 자기가 나서겠다며, 오작동을 일으키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가봤더니 자신이 좀 친한 척 해주었던 잭슨이 거기에 있었던 것.

그런데 물이 차오르자 자동으로 방호벽이 막히면서 모두들 익사하기에 안성맞춤이 되었다.

결국 잭슨은 자신이 해결하겠다면서 공구가 낀 곳으로 가서

죽을 힘을 다해 공구를 빼려 하고, 그 사이 여러 사람들이 또 희생당한다.

하지만 잭슨에게 어느덧 부정애를 느낀 아들 노아는

잭슨을 도우겠다며 같이 가서 도와주는 것도 없이 그저 플래시만 비춰주고,

잭슨은 드디어 공구를 빼내서 문을 닫는데 성공한다.

세계 최고봉이라는 히말라야 산에 부딪혀 산산조각날 뻔한 아크는

겨우 시동을 켜서 충돌을 피하고 드디어 대망의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환호하는 사람들.

시간이 흘러 아크에 몸을 맡긴 채 항해한지도 오래.

드디어 지구의 지각변동이 멈추고 안정을 되찾자,

그들은 새로운 인류의 정착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변해버린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한다.

<멜 깁슨과형사 노릇하다가 어느새 대통령까지 해먹는 대니 글로버>

생각보다 스토리가 길었다.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지구가 어떻게 박살나는가가 전부인데,

워낙 긴 런닝타임(150)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작품의 요지는 결국 인류가 지구의 환경변화로 인해 멸종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아서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모티브가 지구의 종말론이었던 만큼, 종말론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가자.

이 작품의 제목이 2012인 것은 2012년에 지구가 종말한다는 모종의 이론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고대 잉카문명의 마야 인들이 만들었다는 마야 달력.

마야 달력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일 정도로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이 달력은 5128년을 주기로 계속 돌아가게끔 만든

매우 장시간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달력이다.

그런데 이 달력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2012 12 21(혹은 23)까지만 달력이 계산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찬란만 문명과 고도의 천문학,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마야인들이

왜 달력을 2012년까지만 나타내도록 만들었을까?

그 달력에는 2012년 이후에는 더 이상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써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그 이후의 날짜를 셀 달력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2012년 종말론이 급 대두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또 하나의 사실이 2012년 종말론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현대의 인류가 만든 최고의 예측기계인 웹봇.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로 개발된 웹봇은 지구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계이다.

그런데 이 로봇이 2012년 이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웹봇이 그 이후의 지구는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러한 것들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객관적 사실만을 고집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지구의 종말은 아직 먼 미래라고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자연파괴가 심각하고 기후의 변동 등이 급속도로 진행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인류가 살만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특히 환경이 나빠지는 만큼, 인류도 서서히 이를 극복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얘기도 많다.

어떤 이들은 지구의 환경오염은 오히려 세계의 음모라는

요상한 말까지 하고 있을 지경이다.

<극적인 것은 좋은데, 너무 허무맹랑할 정도로 위기 속에서 잘도 탈출한다>

어쨌거나, 실제로 멸망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지켜봐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흥미롭게도 종말론에 대해서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교가 바로 크리스트교인데,

필자는 종교인이 아닌지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쨌든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선한 자는 구원받고

악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주 유명하다.

반면 불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종말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일어나므로 신앙심을 돈독히 하라는 주장도 없다.

그저 탄생과 멸망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 우주상에 단 한 개의 종교가 아닌 이상은

각각 다른 종말론에 대한 얘기는 어느 하나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모든 종교에 중립적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어쨌든 종말이 일어난다고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주 굿 타이밍과 굿 네이밍 센스로 만들어진 것인데,

대체 누가 이런 신선한 감각을 소유했던 것일까?

바로 감독 롤랜드 애머리히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투모로우>이다.

투모로우를 본 독자라면 어딘가 모르게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구의 멸망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감독한 다른 작품에서도

묘하게 인류가 시련을 겪는 고통을 선사한다.

그것도 가족적인 차원이 아니라, 전 인류에 가까운 아주 대규모적인 위기이다.

이것이 바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을 재난 영화의 황태자로 평가받게 한 주요 요인이다.

<하여간 모든 영화에서 개념없는 애완동물 때문에 여럿 다치는 꼴이 생긴다>

이 감독은 정말 묘하게도 지구를 어떻게든 말아먹어야 재미가 느껴지는가 보다.

일단 만드는 작품마다 버라이어티하게 지구를 들들 볶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1992년작 <유니버셜 솔져>에서는 장 끌로드 반담의 화끈한 액션을 볼 수 있었고,

1994년작 <스타게이트>에서는 센세이션에 가까울 정도로

피라미드에 대한 색다른 개념을 선사하면서 SF적 환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일을 터뜨리는데, 그것이 바로 1996년작 <인디펜던스 데이>.

이 작품에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은

그의 주특기로 불리우는 스케일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거대하고, 일단 인정사정없이 박살내고, 일단 닥치는대로 죽인다.

이 작품으로 그는 단번에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고,

이후 또 하나의 SF 대작을 선보이게 된다.

1998년작 <고질라>가 그것인데, 엄청난 투자와 대규모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나름 슬픈 사연이 있는 고질라를 완전 악덕 공룡으로 만들어버린 탓에

이 영화는 의외로 졸작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졸작으로 평가받아도, 2년마다 꾸준히 대작을 선보이는 그답게,

또다시 2000년에는 멜 깁슨이 게릴라로 활약한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를 선보여

정통역사극에도 솜씨를 발휘했고, 그런가하면 2002년에는 <프릭스>를 통해

거대 독거미로 인류를 위협하는 엉뚱한 SF 호러도 만들었더랬다.

이 때부터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대작 아니면 졸작뿐인 극단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프릭스로 쫄딱 망한 롤랜드 애머리히는 이후 모든 사람들의 기대 속에

2004 <투모로우>를 개봉한다.

이 작품은 롤랜드를 다시 대작 감독으로 부상시키는 한편,

재난영화에 있어 가장 충격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감독으로서 인정받게 하였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또 하나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인

<10,000BC>를 개봉하기에 이르는데,

문제는 이 작품이 엄청난 사전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봉 후 발작(일명 발로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롤랜드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다.

여기서 롤랜드는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는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스펙터클한 재난 영화야말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왔다는 것.

그래서 드디어 이번에 또 하나의 재난영화로 투모로우를 능가하는

엄청난 스케일과 비주얼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제는 거대한 스케일로 부족한 스토리를 메우는 감독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또한 독일 출신으로서 SF적 연출에 뛰어난 감각을 선보여서 그런지

독일의 스필버그라는 호칭을 듣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판국에 작업질에 몰두하는 애드리언과 로라>

, 이 영화가 그럼 과연 롤랜드 감독의 명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졸작이 될 수 있을까? 한번 따져보자.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도 좋고, 투입액도 어마어마하고,

더욱이 쟁쟁한 주연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연기력을 극대화한 것도 훌륭하게 보인다.

특히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존 쿠삭 아저씨는,

아주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실력을 인정받은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이 작품에서도 물불 안 가리는 연기 투혼을 보여주고 있는데,

존 쿠삭 본인의 말로는 역대 배역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리쎌 웨폰>, <쏘우> 등으로 잔뼈가 굵직한 대니 글로버가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여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를 풍기면서

나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고,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전혀 안 어울리지만

탐 크루즈와 러브라인을 구성했던 흑인 여배우 탠디 뉴튼이 대통령의 딸 로라 역을 하였다.

인정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배불뚝이 앤하우저 장관 역에는 올리버 플랫이 활약하였는데,

이 배우는 필자가 아주 오래 전에 <삼총사>라는 영화에서

프로토스로 등장하여 낯이 익은 배우이다.

올리버는 그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감칠맛나는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였는데,

희한하게도 미국 출신인데도 꼭 이탈리아나 러시아 출신 마피아 등의

역할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필자가 여기서 부각시키고 싶은 배우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찰리 프로스트라는 9차원 사나이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

처음에 영화를 보고 누구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대머리가 인상적이었던 그 우디 해럴슨이 아니던가!

이 친구 요새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에 본 <내츄럴 본 킬러>라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문제작에서

정말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여 적잖이 놀랬더랬다.

제목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쾌락을 위한 유일한 취미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미치광이 엽기 잔혹 살인자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정말 그때는 저 배우가 마약이라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더랬다.

아무튼 이 배우가 다시 이 작품에서 지구의 종말에 쾌락을 느끼는

미치광이로 나온다는 점에서 무언가 묘한 옛 추억을 느꼈다.

<어쩌다 이제 얼굴까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묘한 배역만 맡게 된 우디 해럴슨(오른쪽)>

, 이정도의 캐스팅이면 언뜻 보아서는 작품이 대작!이겠거니 싶다.

그런데 늘 롤랜드 감독을 괴롭히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형편없는 스토리. 이 작품의 스토리를 보고 느낀 부분은 어떤가?

사실 전체적으로 쭉 보면 답이 뻔히 나오는 스토리 구조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우주선 얘기를 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처럼

수십만 명의 인류를 태운 거대 우주선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우주로 나가는가 하고 기대하기도 하였지만,

나름 반전이라고 준비한 장치가 사실 설마 그거겠어? 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힌트는 영화 초반부터 나온다. 잭슨의 투덜쟁이 아들의 이름에서 그 힌트가 있다.

바로 노아. 아들의 이름이 노아이다. 그리고 지구에 종말이 온다.

그런데 그 종말의 끝에는 바로 세계를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홍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홍수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누구라도 다 아는 얘기. 그렇다. 바로 노아의 방주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막판에 치닫는 결론은 결국 방주이다.

우주선이라고 떡밥을 던져놓고는 결국 제대로 낚은 셈이다.

사실 방주에 대한 암시를 많이 심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

아크 건조를 위한 비밀기지도 히말라야 산중에 만든 것을 보면,

방주가 터키지역의 아라랏산에 놓여졌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꾸미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록 메이드 인 차이나이지만 짱개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거대 아크의 모양을 보면 정말 멋대가리 없는 통자루 모양인데,

실제 방주의 모양도 직사각형에 가까웠다고 하니

이도 어쩌면 나름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스토리가 뻔하다 보니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이 심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가족애.

잭슨이 부인과 이혼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아직까지 가족으로서 인식되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가족애를 되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비단 잭슨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딸의 관계에서도 그려지고,

유리 카보프와 아들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려진다.

또한 텐진과 니마의 가족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주제의식은 제대로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삼총사에서 프로토스 역으로 멋진 활약을 했는데, 이제는 배불뚝이에 볼살도 장난 아니다>

, 생사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판국에서는 누구든 애정을 더 느끼게 마련인데,

사실 이는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구가 멸망하는 시츄에이션 정도면 누구나 서로 한 가족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능적인 수순을 롤랜드 감독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나열했다는 점이다.

좀 재미있다 싶으면 어이없이 터지는 것이 바로 가족애를 자극하는 시퀀스이기 때문에,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

처음에는 좀 봐줄만하지만 갈수록 뻔하고도

적나라하게 연출하다 보니 막 짜증이 날 정도이다.

이건 뭐 나중에 눈물은커녕 하품만 나올 지경으로 만드니,

지나친 것은 역시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실제로도 미국에서 개봉 당시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수입을 얻기는 하였지만,

비평가들에게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2012년에 실제로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식의 모욕적인 평까지 받은 작품이다.

호평도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역시 악평이었더랬다.

이는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의 작가주의적 주제의식을 강조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다분히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헐리우드식 뻥튀기 연출에 질려버린

비평가들의 조롱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억지로 가족애를 끌어올리려는 듯한 설정이 너무 뻔한 연출>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는 의외로 필자를 감동시키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바로 유리의 수송기 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슈퍼카들이 둘러쳐져 있다는 것.

실제 보기도 어려운 이 슈퍼카들이 한 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된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기서 단 1대만에 멀쩡히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벤틀리인데, 왜 벤틀리를 이용해서 탈출할까 하는 이유는,

5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차가 오직 벤틀리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차보다 튼튼하다거나 비싸다거나 해서 고른 이유는 아닌 것.

아무튼 벤틀리를 타고 출발을 하려 하는데, 시동이 안 걸리지 싶다.

그 때 유리의 촌철살인적 대사 작렬.

! 모두 조용히! 엔진~ ~~~”

그렇다. 벤틀리는 음성 인식으로 엔진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마치 사모님이 김귀솨~ 운줜훼~”하는 말투 식으로

조용히 엔진 스타트라는 발음을 작렬해 주시는 것.

나름 가장 코믹적인(어쩌면 유일한) 장면이기도 한데,

필자 입장에서는 벤틀리의 첨단 기술이 신기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재미와 평가를 떠나서,

그나마 괜찮았다고 평하고 싶은 것이,

지구가 쩍쩍 갈라지고 화산이 뻥하니 터지는 시퀀스의 그래픽이 나름 예술이라는 점.

실제로 정말 지구가 저렇게 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스펙터클하고도 소름끼치는 영상이었다.

전 세계의 대륙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이되고,

지구의 자장이 바뀌는 등의 파국을 생각해보면,

인류는 지구 멸망 이후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결국 과거의 문명의 형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고 새출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해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2012년 마야인들이 예언했던 인류의 멸망은 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뭐 때문에 이리도 열심히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고도의 찬란한 문명을 향유했던 마야인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기이한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도 정말 그들처럼 하루아침에 증발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인생 뭐 있어? 훌랄라~!!!”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바타 (Avatar)  (26) 2009.12.22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3) 2009.12.15
분닥 세인트 (The Boondock Saints)  (2) 2009.11.06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38) 2009.09.28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26) 2009.09.21
posted by 미까 2009. 11. 11. 14:01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SF 사이버펑크의 일대혁명으로 다가온 공각기동대>

1982년 영화계, 아니 인류에게는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붕괴하고

밝았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청사진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을 던져주었던 한 편의 명작이 탄생한다.

당시 <에일리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외계몬스터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보여준 영화로 일약 스타에 오른 리들리 스콧 감독이,

또 한번의 자신만의 SF적 철학으로 무장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을 너무나도 초월한 나머지 흥행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지만,

반 고흐의 그림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시대가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SF철학 영화의 시초이자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울하고 어둡기 짝이 없는 미래에,

인류는 인류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드는 시련에 닥치게 된다.

바로 인간과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 레플리컨트

스스로를 생명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가짜 인간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과연 생명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한 혼돈을 느끼게 되었다.

기존에도, 그 이후에도 이토록 심오한 주제를 다룬 SF철학 영화는 나오지 못하였다.

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주제의식을 심도있게 다루려고 노력하였지만,

이는 모두 B급 패러디에 불과한 허사로 끝나고 말았더랬다.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 이후 13년이 지나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를 보다 심도있게 발전시킨 희대의 명작이 일본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SF철학 애니메이션의 바이블 <공각기동대>인 것이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수백장의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 정도인 내용에 대해서

일단 스토리만 짚고 넘어가보자.

<오로지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탄생한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

때는 2029. 기업의 네트가 별을 덮고 전자와 빛이 뛰어다녀도

국가나 민족이 사라져 없어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는 근미래.

도시의 야경이 찬란히 흐르는 빌딩 한 곳에서는

일명 공각기동대라고 불리우는 공안 9과 요원들이 모종의 대화를 감시하고 있다.

프로젝트 2501’이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의

정치적 망명을 조율하고 있던 회담장에서,

공안 6과의 꺼림칙한 행동이 의심스러웠던 공안 9과는

마침내 프로그래머를 빼돌리려던 가벨 공화국의 대사를 처리하기로 나선다.

빌딩 옥상에서 자유낙하하여 기습적으로 대사를 사살한 공안 9과 소속의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광학미체를 써서 경찰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며 모습을 감춘다.

한편, 이 시기엔 얼마 전부터 정체 불명의 해커가 주로 EC권에 출몰하여 네트에 개입,

주가 조작, 정보 수집, 정치 공작, 테러, 전뇌 윤리 침해 등 각종 범죄를 일으켰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고스트 해킹해서 마음대로 조종하였기 때문에,

일명 인형사로 불리었다.

인형사를 쫓던 공안 9과는 익명의 청소부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자 그를 검거하려고 나선다.

하지만 그 청소부는 단지 자기의 마누라가 바람이 나서

그 증거를 포착하기 위해 공중전화기를 이용해 해킹을 하고 있었던 것.

공안 9과가 쫓는다는 것을 알게 된 청소부는 냅다 도망가고,

그 와중에 자신에게 정보를 준 어느 콧수염 사나이에게도 도망가라고 외친다.

콧수염 사나이는 갑자기 공안 9과의 수사차량에 총격을 가하고

광학미체를 써서 도주, 이를 쿠사나기가 쫓는다.

그리고 길고 긴 추격 끝에 입식타격 룰로 싸워 상대를 쓰러뜨리는 쿠사나기.

그녀는 범인을 향해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아무튼 범인 체포 후 조사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킹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청소부는,

공안 9과의 조사 결과 그의 모든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인형사가 청소부의 전뇌를 고스트 해킹해서 조종했던 것.

고스트는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는 쿠사나기는,

휴가를 틈타 자신의 취미인 스쿠버다이빙을 즐긴다.

공안 9과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바트는 그런 쿠사나기에게

잘못하다가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충고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순간 새로운 세상과 자신을 보는 느낌이라는

쿠사나기의 말에 멍때리는 표정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빌딩 숲 사이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흠칫 놀라는 쿠사나기.

홀로 자신의 머리 속에서 외쳐진 그 소리에 대해 쿠사나기는

고스트의 속삭임이 아닐까 하고 고뇌한다.

<광학미체를 써서 유유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한편, 비가 오는 날 밤 길거리에서 어느 나체의 여인이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피해자는 인간이 아닌 의체.

하지만 쿠사나기 소령과 똑 같은 의체를 생산하는 메가틱 바디사의 의체가

제멋대로 움직여서 사고를 냈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 또한 인형사의 짓이라고 판단한 공안 9과는

부서진 의체를 수거하여 실험실로 가져온다.

조사 결과 비록 전뇌에 저장된 내용은 없지만,

특정부위에서 펄스가 감지되어 이상한 현상을 보이게 되고,

쿠사나기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고스트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때마침 공안 6과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 조사할 것이 있다면서,

닥터 윌리스라는 전문가를 대동한다.

그들은 예전부터 인형사라는 해커를 잡기 위해 공성방벽을 치고 있었고,

그 것이 바로 이 의체에 의해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 잠잠하던 의체가 스스로 움직여 자신을 소개한다.

일명 인형사로 불리우는 자신은,

정식 네임 프로젝트 2501’로 불리우는 프로그램으로서,

최초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네트 상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해오다가,

어느덧 자신이 하나의 존재로서 인지되기 시작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각하게 된 프로젝트 2501’

자신이 인격체로서 존중받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이 곳에 왔다고 한다.

바로 자신과 똑 같은 처지에 있는 쿠사나기 소령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리고 나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는 프로젝트 2501’,

일개 프로그램에 불과할 뿐이라는 공안 6과의 말싸움.

그 순간 실험실 내부에서 연막탄이 터지면서

갑자기 누군가의 습격으로 의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잽싸게 뒤를 쫓는 쿠사나기와 바트.

이 과정에서 본부의 이시카와는 아라마키 국장의 명령으로

프로젝트 2501’ 대해서 조사하게 되고,

이시카와는 이 것이 외무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이름도 없고 대사도 없지만, 이 캐릭터가 쿠사나기의 고뇌를 대변한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범죄 차량을 쫓던 바트는 엉뚱한 차량을 쫓게 되고,

쿠사나기는 어느 박물관으로 들어간 다른 차량을 쫓아 결전의 준비를 하고 잠입한다.

고요한 박물관 내부에서 쿠사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광학미체를 사용하는 대전차용 탱크.

아무리 강한 쿠사나기라 하여도 강철과 발칸으로 무장한 탱크에는 무리.

결국 탱크에 올라타 직접 내부의 파일럿을 제어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쿠사나기는 혼신을 다해 탱크 위의 해치를 열고자 한다.

하지만 허용을 오버하는 힘을 소모하여 산산이 부서지는 쿠사나기.

결국 탱크에 붙잡혀 머리가 으그러져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려는 찰나,

뒤늦게 도착한 바트가 대전차용 샷건으로 탱크를 때려눕히고 쿠사나기를 살린다.

쿠사나기와 의체까지 회수한 바트.

하지만 쿠사나기는 이대로 인형사가 깃든 의체에 다이빙하기를 요구한다.

, 인형사의 전뇌에 자신이 들어가보겠다는 것.

그러자 인형사가 서로 융합하는 것은

생명체가 다양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과 동일한 생명체의 기본적인 기능으로서,

그것만이 바로 자신이 생명체로 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융합의 끝에는 인형사도,

쿠사나기도 아닌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남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동의하는 쿠사나기.

한편 애초부터 프로젝트 2501’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스스로 자각하는 바람에 프로그램이 도망가버리자

이를 아무도 모르게 회수하려 했던 공안 6과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인형사와 쿠사나기를 모두 파괴해 버리기로 결정한다.

공중에서 저격수의 총알이 인형사의 의체와 쿠사나기의 머리를 향해 작렬하고,

바트는 자신의 한쪽 팔을 희생하여

쿠사나기기의 전뇌가 담긴 머리를 가까스로 구해낸다.

모든 사건이 그렇게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실종으로 처리된 쿠사나기 소령.

하지만 바트의 집에는 어린아이의 의체를 가지고

쿠사나기의 얼굴을 가진 존재가 숨어 있었다.

인형사와의 융합 이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쿠사나기.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는 바트의 질문에

그녀는 넓디 넓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 어디로 갈까? 네트는 넓으니까라는 말을 남긴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넓으니까... 성인사이트부터 고고씽???>

필자가 스토리를 핵심적인 사건 위주로 나열은 했지만,

아마 이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은 독자라면

스토리만으로 전체적인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갈수 있겠다.

하긴 작품을 직접 봐도 이해가 잘 안가는 내용뿐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작품은 아예 처음부터 친절한 해설은

결코 해주지 않는 매우 불친절한 작품이다.

이는 사실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원작의 내용을

2시간짜리 애니메이션에 집어넣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일본 만화 특유의 애매모호한 상황 전개를 통해

계속해서 고뇌하게 만드는 묘한 연출 기법이기도 하다.

, 앞 뒤 설명 탁탁 잘라놓고 핵심 내용만 던져주어서,

앞과 뒤의 내용은 알아서 추측하라는 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욱 매력적이다.

10번은 봐야 그나마 전체적인 상황들이 연결이 되는

이해의 단계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불친절함에 넌더리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런 작품을 선호한다.

한두 번 보고 질려버리는 영화보다는,

여러 번 보면 볼수록 그 내면에 담긴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더 좋다.

바로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들의 작품 속에 숨겨놓은 여러 비밀들을 알아내는 재미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이 작품의 원작만화. 이미지는 해외판본이다. 쭉쭉빵빵의 쿠나사기가 눈에 띈다>

일단 원작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작품은 시로 마사무네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는 원래 일본 만화답게 쭉쭉 빵빵 미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메카닉 만화를 즐겨 그리는 SF 만화가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남들과 사뭇 달랐는데,

그것은 바로 작품 속에 치밀하게 구성된 설정과 SF 철학적 주제 의식을 담았다는 것.

깊이 뿐만 아니라 설정과 구성에 있어서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에

그는 오시이 마모루라는 어느 한 괴짜 천재 감독의 눈에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공각기동대였다.

본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스토리 중 일부를 채택하고 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오시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투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모아서

마치 다른 에피소드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원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생각만큼 무겁지는 않고

때로는 재미있는 유머코드도 섞여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면서 이러한 부스러기는 전부 털어내고

철저하게 심각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차이는 공각기동대의 TV애니메이션 버전인

<공각기동대 S.A.C(Stand Alone Complex)>와 비교할 때 쉽게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원작을 더욱 심화시켜 결국 역사상 최고의 SF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탄생시킨 오시이 마모루,

그 인간은 대체 누구인가?

쉽게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을 극강의 리얼리티로 이끈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쿠사나기의 탄생 과정. 저 디테일을 보라. 오시이 마모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일단 자신이 철저하게 작가주의적 정신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험적인 작품도 많이 만들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철학적 코드를 많이 시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여러가지 상징을 심어 넣어서 보이는 것 외적인

무언가 다른 내용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가 이러한 끼를 최초로 본격화한 것은

바로 1985년작 <천사의 알>이다.

도무지 설명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세계관과 캐릭터.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세상을 보여준 그는,

당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비주얼을 실현하며

일약 다크호스로 떠오른다.

그러다가 기어이 일을 터뜨리게 되는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희대의 명작,

바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그것이다.

살짝 상업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번 리얼리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놀라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바로 광각렌즈적 프레임을 도입하여 영화와 같은 질감을 구현했던 것.

여러 편의 극장판과 TV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를 최고의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그런데, 오시이 마모루는 괴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대학 때부터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한 경험도 있어서,

실제로 그는 애니메이션 말고도 여러 편의 실사영화를 제작한다.

사실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모두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은 드물기 때문에,

그의 입지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장르를

교묘히 짬뽕하는 시도도 해 볼만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는데,

문제는 실사 영화에서는 한계가 있었던 것.

그 대표적 예가 2001년작 <아발론>인데,

비록 주제의식은 좋았다고 하나 흥행에서나 평가에서는 졸작에 미치고 말았다.

애초부터 만화다운 발상 자체가 잘 안 먹혔던 것.

게다가 공교롭게도, 역사적으로 일본 영화계에 있어

만화를 모티브로 한 실사 영화는 죄다 죽을 썼다는 것이다.

이 역사의 불문율에 오시이 마모루도 피해가지는 못하였던 듯싶다.

어쨌든 오시이 마모루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기만의 작가주의 정신을 고집하여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고의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와이 겐지의 음악.

어딘가 모르게 블레이드 러너와 많이 닮아 있다. 영상도 음악도>

어쩌다보니 스탭에 대한 소개부터 되었는데,

기왕 하는 김에 한 명 더 하자.

바로 오시이 마모루만큼 엄청난 사나이가 스탶에 속해 있는데,

음악을 맡은 가와이 겐지가 장본인이다.

일단 이 작품의 오프닝에서 흘러나오는 귀신이 봉창뚜들기는 듯한 노래를 들어보라.

정말 소름끼치지 않나?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듣다 보면 의외로 매력이 느껴진다.

어딘가 거북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운 음악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는 중반부에 쿠사나기가 도시의 암울한 거리를 배경으로

배회할 때 나오는 음악을 들어보라. 참으로 신묘하다.

무언가 마음 속에서 내 고스트가 술렁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가와이 겐지는 심리음악의 대가이다.

일명 사운드의 심리학자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일찍이 OST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어딘가 거북하면서도

몽환적이고 웅장하면서 매력적인 음악, 피부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드는 장인이다.

그는 일찍이 오시이 마모루라는 거장과 함께 입지를 굳혔다.

오시이 마모루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로 자리매김했듯이,

그도 이 작품을 통해 천재적 음악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는 오시이 마모루가 추구하는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주제 의식이

그의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가와이 겐지는 오시이 마모루와 많은 작품을 같이 하게 된다.

<아바론>은 물론이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의 속편인 <이노센스>의 음악도 그가 담당했다.

필자가 리뷰했던 <엽문>에서도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맡아 장중한 음악을 선보였다는 것을 강조했던 적이 있다.

게다가 가와이 겐지는 우리나라 영화인 <남극일기>에서도

음악을 맡아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가와이 겐지는 <> 시리즈에서도 음악을 맡아

특유의 소름끼치는 음악을 맘껏 선보이기도 하였다.

<미래에는 이렇게 자신의 뇌를 슬쩍 꺼내서 요리조리 백업도 하고 카피도 할 수 있다는 충격적 설정>

휴우이제는 작품으로 돌아와서 얘기해 보자.

아주 먼 산을 돌아온 듯 한 느낌인데,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이 작품에 대한 고찰은 그야말로 수백페이지의 논문으로도 부족한

엄청난 내용의 것이 될 테니.

하지만, 필자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것만을 얘기하고,

나머지 철학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다른 이의 글에서 일부 발췌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작품은 누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철저하게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이 작품을 10번 정도 봐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몇 가지 용어나 컨셉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일단 배경이 되는 2029년은

우리가 현재 보편화하고 있는 네트워크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이다.

그래서 지금은 PC나 단말기가 있어야 소통되는 네트워크를 2029년에는

직접 몸에 연결해서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기가 바로 전뇌’(전자 뇌).

감히 인간의 뇌를 어찌 기계로 대체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설정상 그렇다.

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체까지 전부 기계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의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전뇌와 의체의 존재로 인하여 인간의 의식은 데이터화되어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이 가능하다.

서로 랜 선만 꽂으면 PC끼리 원격제어가 가능한 것처럼,

내가 다른 의체로 들어가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전뇌로 자신의 의식을 이동시키는 것을 다이빙이라고 한다.

마치 물 속에 다이빙하는 것과 같이 남의 의식 속에 내가 다이빙한다는 의미이다.

의체화나 전뇌화는 의무 사항은 아닌 듯싶다.

역시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그러한 경지에까지 도달한 과학기술 이지만,

쿠사나기가 말하듯이, 고도의 전문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메카닉의 정비를 받지 않고는 오히려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 특수화의 끝에 있는 것은 느슨한 죽음뿐이라는 것이다.

의체화를 하지 않고 전뇌화만 한 인물로 토그사가 등장한다.

토그사는 자신의 그러한 이력이 공안 9과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쿠사나기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토그사를 뽑았다고 한다.

이 의미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따로 다루겠다.

<쿠사나기의 듬직한 친구 바트 소령. 뇌의 일부만 빼고 전부 의체화된 터미네이터이다>

쿠사나기와 바트는 전부 의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손상되어도 금새 다른 의체로 갈아타면 된다.

, 전뇌는 한번 손실되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백업을 받아놓았으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일단 전뇌만 안전하면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 인간은 기계를 통해 불사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미래의 도시를 관장한는 공안에는 여러 과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임무에 따라 구분이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9과는 수상 직속의 특수 실행 부대로,

전뇌 네트나 공안 관계의 테러 대책 등의 공적으로는

불가능한 사건의 감사나 해결을 임무로 한다.

특히 이들은 네트워크 윤리나 범죄를 다루기 때문에

공각기동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안 9과의 요원들은 대부분 최첨단 의체와 해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뇌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애초부터 인간이었던 사람의 의식을 전뇌로 옮긴 것과,

아예 처음부터 기계로 만들어진 전뇌가 있다.

이 중 전자는 어떤 메커니즘이던 간에,

사람의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흔히 영혼으로도 부를 수 있는 고스트가 존재한다.

이 고스트라는 것은 사실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애매하지만,

흔히 자아라는 것을 지각하게 해주고,

생명체로서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의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기계로 태어난 전뇌는 이러한 의식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인공적인 지능이 삽입되기 때문에 고스트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쿠사나기가 처음부터 작렬해주시는 광학미체

가장 고도화된 의체만의 특수 능력이다.

광학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표피를 바꾸어주는 기능인데,

너무 적용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보니 공안에서도

일부 과(9과와 2과만 적용한 것으로 알려짐)만 적용하고 있다.

<왼쪽의 청소부는 자신이 고스트 해킹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삶을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정말고 무섭고 끔찍한미래의 우리의 자화상이아닌가>

모든 사건의 전범인 프로젝트 2501’은 스토리에서도 살짝 설명했지만,

애초에 프로그램으로 태어났다.

맨 처음 등장하는 망명을 요하는 프로그래머가 바로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이다.

프로그램이 지멋대로 날뛰다보니 공안 6과에서 사건을 쉬쉬하기 위해

프로그래머를 해외로 빼돌리려고 했던 것.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은 비록 유형화된 실체는 없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의식을 어디로든 뻗쳐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 전뇌없는 의식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는 이따가 다시 다루겠다.

이보다도 더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정의된 용어나 컨셉들이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다루기로 하겠다.

이 정도만 알아도 작품을 보는데 지장은 없으며,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속편 <이노센스>에서도

어느 정도 단서로서 작용은 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주제로 들어가보자.

무엇부터 다뤄야 할까

이 작품에는 너무나도 많은 암시와 상징이 깔려있어서

하나하나 거론하다가는 끝을 못 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은 이 작품의 메인 사상인 생명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이 작품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등장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생명체의 형태는 아니다.

그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혹은 전부 기계화되어 있다.

완전한 휴머노이드의 형태를 제외하고 바트와 같이

몸 전체와 뇌의 일부분이 전뇌화되어 있더라도 일단 그들은 생명체로 보인다.

, 쿠사나기는 다르다. 오프닝 장면에서도 보이듯이

쿠사나기는 마치 처음부터 완벽하게 제조된 휴머노이드로 여겨진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 없는 자아에 대해 늘 끊임없이 고뇌한다.

자신은 진정 생명체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하고.

그럼 우리는 무엇을 생명체라고 해야 하는가?

단지 의식만 있으면 생명체인가?

살아숨쉬는 심장이 기계로 대체되고, 뇌는 차가운 금속에 의해 단단하게 바뀌어버려

수많은 전기적 신호들이 오고가게 되어버린 무거운 금속덩어리가 과연 생명체인가?

반대로 의식은 없지만 숨은 쉬고 있는 코마상태의 환자도 우리는 생명체라고 한다.

이는 뇌만 남아있고 의식도 없는 기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공안 6과 국장과 프로젝트 2501의 공성방벽 개발자인 닥터 윌리스>

일찍이 생명체의 정의에 대해서 <블레이드 러너>

촌철살인적인 메시지를 제시해 주었다.

레플리컨트로 불리우는 휴머노이드들이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자아를 의식하지만,

단지 제조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한된 생명을 부여받고 짧은 삶을 살아간다.

비록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끝내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형사 데커드에게 의미론적인 흔적만을 선사한다.

단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생명체가 아닌 단순한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상은 유지되는 듯싶다.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똑 같은 기계의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지만,

태생부터가 자연체에서 기계화된 인간과,

애초부터 기계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사이에는

자연적인 탄생과 인위적인 탄생이라는 차이점에서 생명체의 기준이 명확하다.

자연적인 탄생에는 정해진 규칙도,

예측도 불가능하기에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정해진 대로 만들어져서 정해진 대로 기억이 주입되기 때문이다.

, 똑 같은 모습과 똑 같은 기억과 똑 같은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휴머노이드들이

마치 카피된 것처럼 세상에 널려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반부에 가와이 겐지의 음악과 함께 우울한 도시 속을 스치며 지나가는

쿠사나기의 눈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쇼윈도 안의 마네킹이 비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그런데, 생명이라는 기준에 적용하기 힘든 예외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바로 아주 우연히 자아를 갖게 된 프로젝트 2501’의 탄생.

그는(그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비록 태초에 인간이 만든 규칙에 의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다양한 네트의 세상을 휘저으며 다니다가 우연히도 버그가 발생하여

스스로를 자각하게 되고, 이에 예상치도 못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생명체로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드러낸다.

인형사는 공안 9과에 잡혀왔을 때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의체에 들어간 것은 6과의 공성방벽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은 나의 의사이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당연히 식겁하는 기존의 생명체들은 인형사를

단순한 자기복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인형사는 보기좋게 기존의 생명체에 대한 정의를 흐트려 놓는다.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 역시 자기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것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란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단지 기억에 의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고 해도 사람은 기억에 의해 사는 법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생명체라는 증거가 없다는 말에 인형사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은 생명을 정의할 수 없으니까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쿠사나기는 자신의 육체를 파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버릴 수 있게 된다. 이는 변이를 위한 필요 과정이다>

인형사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은 DNA라는 유전자 코드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후세에 남기고, 그 기억을 물려받은 후세는

결국 또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명체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개의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자신의 기억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복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일까?

이에 인형사와 쿠사나기가 마지막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자.

“어떤 것을 이해하고 나서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자신을 생명체라고 말하였지만,

현 상태로는 아직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시스템에는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다는

생명으로서의 기본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사를 남길 수 있잖아."

"복사는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한 종류의 펄스에 의해 전멸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복사로는 개성이나 다양성이 생기지 않는다.

보다 존재하기 위해서, 복잡 다양화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버린다.

세포가 대사를 반복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노화하고 죽을 때까지

대량의 경험 정보를 지 우고 유전자와 모방자만을 남기는 것도

파국에 대한 방어기능이다."

"그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도 다양성이나

흔들림을 가지고 싶은 것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 생명체란 하나의 기억에 의해 존재하지만

그 기억이 다음 세대에 100% 똑같이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버려지고 일부는 다른 개체의 기억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전이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기억과 기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다양성의 창조가 발생됨으로써 비로소

생명체라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본 것이다.

현재의 우리는 정자와 난자의 배합에서 발생하는

부모의 유전자간의 변이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육체를 기계로 대체한 미래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유전자의 변이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 유전자가 반드시 DNA라는 단백질 덩어리일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의 몸을 가지게 된 인간은 더 이상 체내에

DNA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나마 인간 본연으로서 가지고 있던 증거물,

바로 의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변이를 꾀한다.

오로지 정신체로서만 존재하던 인형사에게 유일한 기억의 도구는

바로 그 스스로의 의식이었고,

쿠사나기 역시 스스로 고뇌하게 만드는 의식만이

유일한 생명체로서의 증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형사는 왜 하필 융합의 대상으로 쿠사나기를 선택하였을까?

재미있게도 인형사는 쿠사나기를 직접 만나기 위해 공안 9과에 오고,

아예 대놓고 융합하고 싶다는 말로 프로포즈를 한다.

이를 암시하는 대사가 공안 9과의 멤버들 사이에서 오고 간다.

“인형사 녀석 왜 9과로 들어갔지?”

“어쩌면 짝사랑의 상대라도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사랑이 반드시 육체적인 교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정신적인 사랑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

흔히 플라토닉 러브라고 불리어지는 순수한 정신적 사랑을 말이다.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또다른 자신과 하나가 되는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인간은 후세를 남기기 위해 상대를 찾아야 하는데,

그 동기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은 인류가 수 세대를 거쳐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연적인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자면 인형사의 쿠사나기에 대한 집착은

바로 플라토닉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어한 것인지도.

이는 지극히 우리와 너무도 닮아있다.

인형사의 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생명체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쿠사나기는 이 사랑을 기꺼이 받아준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랑에 대한 대가를 알고 있었다.

사랑은 늘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지만 희망과 기쁨도 가져온다.

이는 내가 다른 세상으로 또 다른 존재로 각성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로 느낀다.

우리는 비록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는 태아일 때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희망과 기쁨을 예상할 것이다.

쿠사나기는 비록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느낌을 아주 자주 느끼곤 한다.

바로 휴가 시간에 즐기는 다이빙.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두려움, 불안, 고독, 어두움그리고 어쩌면 희망?

해면으로 떠 올라갈 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쿠사나기는 최후의 순간에 인형사와의 융합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 등을 느끼지만,

어쩌면 정말 자신 앞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다이빙하고 나서 정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미 인형사는 자신을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라고 소개하였고,

쿠사나기는 실제로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다이빙을 통해 인형사와 융합함으로써 새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태초의 생명체는 바로 바다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는 이 작품에서 생명체로서 탄생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인형사의 탄생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인형사는 자신이 우연히 정보의 바다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우연히라는 표현이 상당히 중요한데,

인간을 비롯해 모든 종은 바로 기억이라는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연한버그에 의해 새롭게 진화하게 된다.

아니, 태초에 아무런 생명체도 없던 바다 속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연히라는 표현은 그 대가로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바로 생명체가 가지는 기본적인 조건임을 뜻한다.

<필자는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심도있게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먹는다>

, 이제 쿠사나기는 그 우연한계기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계단 앞에 섰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탱크와의 격전에서 탱크가 쏜 발칸이

진화계통도가 그려진 벽을 타고 박히며,

종의 최상위 단계에서 멈추는 장면이다.

현재 인류를 대표하는 종까지 그려진 그 진화계통도 상위에 새롭게 오를 수 있는 종,

그것이 바로 쿠사나기인 것이다.

그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쿠사나기는 그 암시를 통해 인형사와의 융합으로

새로운 종으로서의 탄생을 기도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이러한 고뇌에 찬 존재들이

그 새로운 도약의 계단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던 반면,

<공각기동대>는 아주 친절하게도 그 계단을 짚고 올라선다.

그 후에 새로운 의체를 가진 쿠사나기는 새로운 목소리를 선보이며

자신이 과거의 쿠사나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바트는 쿠사나기가 맞느냐는 질문을 던지지만,

쿠사나기(어쩌면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는)는 이와 같이 대답한다.

“바트. 언젠가 바다 위에서 들은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어?

그 말의 앞에는 이런 대목이 있어.

어린 아이일 때는 말하는 것도 어린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처럼...

논하는 것도 어린 아이처럼이지만

사람으로 되기에는 어린 아이인 것을 버리도다.

여기에는 인형사라고 불리는 프로그램도 소령이라고 불린 여자도 없어.”

이제 새로운 종으로서 거듭나게 된 쿠사나기는,

이제 자신이 생명체로서 할 수 있는 권리,

즉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네트로 둘러싸인 세상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 정도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지만,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은 정말로 다양하다.

타인의 글을 보면 니체의 초인적 삶과 허무주의로 접근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데카르트식 성찰의 발전 단계로 보는 사람도 있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다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일단 철학사조가 튀어나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해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재미있게도 오시이 마모루는 바로 이러한 불친절함을 작품 곳곳에 숨겨놓았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몇몇 명언이나 문구가 인용되는데,

하나같이 처음 듣는 말들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

, 알아서 해석하라는 의미이다.

이 명언들을 하나씩 의미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하려면

스스로가 이미 이 작품의 매니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광학미체까지 쓸 줄 아는 초강력 탱크. 이는 새 존재로의 도약을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불친절함은 아예 속편격인 <이노센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인용문의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아주 심각하게 등장한다.

어쨌든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기법이니만큼

결코 하나의 표현 조차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여러가지 인용문 외에도 오시이 마모루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어떤 캐릭터인지 잘 모르겠다면,

청소부가 자신의 딸래미의 사진이라고 들고 있던 그 사진 속에 있었던

진짜 피사체를 유심히 보라.

사실 그건 바셋 하운드 종의 강아지이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중반부에 쿠사나기가 도시를 방황할 때

곤도라의 다리 위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강아지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식하지 않으면 그냥 상황설정이겠거니 하겠지만,

사실 이 강아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마음이 듬뿍 담긴 창작물이다.

이유는 단 하나, 오시이 마모루가 개를 좋아하기 때문.

여기에는 오시이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추측하건데 온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객관적인 인류의 관찰자로

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덧붙여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가 바셋 하운드를 키우고 있다는 점.

쿠사나기와 바트, 토그사라는 3명의 사로 다른 인물이 암시하는 바도 재미있다.

이들은 똑 같은 공안 9과 요원이지만, 삶의 방식은 다르다.

쿠사나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보다 나은 인류로서,

아니 궁극적으로 생명체로서 도약하기를 꿈꾸고,

반대로 바트는 이미 궁극의 의체화 단계에 이른 상태에서

더 이상의 도약을 거부하고 그대로 남으려 한다.

그런데 토그사는 아예 의체화도 진행하지 않고 순수하게

오리지널만을 고집하는 구시대적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셋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은 누구일까?

흔히 생각하면 의체화를 하지 않은 토그사가 제일 멍청해 보인다.

다들 의체화를 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쿠사나기는 특수화의 끝에 있는 것은 느슨한 죽음이라고 하였다.

이미 쿠사나기는 그 특수화의 끝에 있었기 때문에

도약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토그사는 아직 특수화의 끝에 와있지 않다.

그는 여전히 약한 존재로서 군림한다.

하지만, 그 약함이 내면의 강함을 불러일으킨다.

살고자 하는 욕망, 살아야겠다는 끈질김,

조금이라도 다치면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집착,

그런 것들이 때로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쿠사나기와 융합을 원하는 인형사의 눈빛은, 쿠사나기의 그 무엇과 무척 닮아있다>

<매트릭스>에서 이 것을 풍자하는 에이전트 스미스의 대사는 가히 압권이다.

매트릭스를 편한 세상으로 만들어 주었더니 모두 인간들이 죽어버렸다는 것.

, 인간은 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명력을 잃고 느슨한 죽음을 기다린다.

오히려 불안정한 상태여야 생명력을 얻고 존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토그사의 그러한 생명력 때문에 쿠사나기는 어쩌면 그를 부러워했을 지도 모른다.

토그사는 또한 자신이 지켜야 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는 완전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가족은 생명력의 또 다른 근원이 되기도 한다.

쿠사나기에는 없는 과거의 기억과, 가족, 그리고 평범한 삶.

그것은 바트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토그사만이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쿠사나기는 토그사를 공안 9과로 특별히 모셔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속뜻을 모르는 토그사는 자신이 쿠사나기를 대신해서

바트와 호흡을 맞추기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갈등을 품게 된다.

그러한 갈등은 아주 미약하게 드러나지만,

속편에서는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만다.

밝혀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천사의 알> <공각기동대>

인류의 진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코드를 이해한다면,

극 중 캐릭터의 묘한 일치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우연일지, 아니면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천사의 알>에서 마지막에 여인으로 숙성(?)하는 소녀의 모습이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가 들어간 의체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

둘 다 보다 나은 존재로 전이한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과연 이 것은 작가의 의도일까?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인형사의 의체와 쿠사나기의 얼굴에서 닮은 부분이 있다.

처음에 사고가 난 직후 실려온 의체의 얼굴에서는 안 보이다가,

갑자기 인형사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부터 그 얼글표정과 인상은

쿠사나기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 인형사가 쿠사나기에게 우리는 서로 닮아있다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려는 듯이 그 외모마저 닮게 그렸다고나 할까.

에고너무 무거운 얘기들만을 꺼내왔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여기까지 읽지 않고 중간에 읽다가 지루해서 사이트를 닫았을지도.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더 이상 무거운 얘기는 없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이제 다른 얘기로 넘어가보겠다.

흥행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이 작품은 1995년 일본에서 개봉 직후 정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애니메이션 치고 블록버스터로 인식될 만큼 엄청난 액수가 투입되었지만,

이를 상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하니 말은 다했다.

그런데, 이 기세를 몰아 과감히 공략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히려 기대 이하의 성과를 냈다.

애초에 이 작품은 일본 시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진출이라는 동시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유럽의 공동투자자를 영입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왜 이런 푸대접을 받았을까?

추측컨데 아마도 시대를 초월하는 진보적 주제의식이

단순한 서구인들의 머리에 들어가기엔 너무도 과분이 아니었다 싶다.

일찍이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준 행보처럼,

이 작품도 서구인들에게는 너무 낯설고 두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격당하기 직전 쿠사나기는 하늘로부터 천사를 보게 된다.

이는 새 존재로서의 도래를 뜻하는 하늘의 축복인가?>

국내에서는 당시 일본만화가 정식 수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의 루트를 통해 암암리에 배포되었고,

이미 그 영향력은 파괴적일 정도로 뻗쳐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일본문화가 일부 개방되면서

이 작품도 드디어 정식으로 국내 극장에 걸리게 된다.

바야흐로 작품의 탄생 이후 6년만의 일이었다.

뭐 이미 볼 건 다 본 사람들이었으니 기대만큼

극장 흥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 이토록 충격적인 작품이 극장에 걸렸다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던가를 알 수 있는 좋은 대목일 것이다.

여하튼 일본에서는 대 인기 폭발이었던 지라,

이후 TV판으로도 제작이 이루어져 2004년에

26부작의 TV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S.A.C>가 탄생한다.

이 작품은 극장판 공각기동대와는 전혀 달리 철저하게 원작이 형식을 따라간다.

이야기도 전혀 다른 구도이기 때문에 TV판을 극장판의 뒷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예 별개의 스토리와 설정으로 이해하고 봐야 하는데,

그래서인지 TV판에는 인격적으로 고뇌하는 쿠사나기의 모습이라던가

어딘가 모르게 특수화의 끝에서 느슨한 죽음에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건을 해결하는 당차고 기운센 천하무적 여걸 소령으로 보일 뿐이다.

대신 바트나 토그사, 이시카와, 사이토, 보우마 등등

공안 9과의 많은 식구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재치넘치는 요소가 많다.

특히 극장판에서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다치코마라는

인공지능 전투유닛들이 펼치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그것.

오히려 이들이 각기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며 때로는

극장판의 쿠사나기가 보여주었던 자아에 대한 고민을 대신 보여주기도 한다.

TV판은 각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과연 미래에 우리가 처하는 철학적, 윤리적, 도덕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색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TV판답게 많이 무겁지는 않다.

대신 스마일맨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극장판의 인형사와 유사한 컨셉을 심어주면서

시리즈 전반에 걸쳐 커다란 문제의 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역시 무게감에 있어서는 인형사에 비하면 보행기타고 다니는 어린아이 수준.

<공각기동대 TV판인 S.A.C. 쿠사나기의 꿀벅지가 도드라지는 도발적인 외모와 자태가 참으로 눈물겹다.

변강쇠가 된 듯한 바트의 저 모습은 더욱 안습...>

TV판에서 그나마 매력적이라고 느낀 요소는,

공안 9과와 그에 얽힌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멤버들이 위기에 처한다는 점이다.

결국 시리즈 막판에서 공안 9과는 내부의 정치적 음모로 인해 산산이 흩어지지만,

바로 이 부분이 원작만화에서 나름 비중있게 다룬 부분이다.

TV판은 이후 <공각기동대 S.A.C 2nd GIG>를 내놓으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또 다시 26부작의 스토리로 담아내고 있다.

보다 강화된 주제의식과 액션, 그리고 정교화된 스토리는

또 다른 쿠사나기에 대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도 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또 다른 극장판 <공각기동대 S.A.C – Solid State Society>를 제작한다.

혹자는 이를 <이노넨스>의 후속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TV판의 설정을 따라가고 있다.

따라서 애초부터 극장판으로 제작된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원작에서 완전히 멀어져 오시이 마모루만의 작품이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TV판이 얼마나 오시이 마모루스럽지 않은가는 음악 감독이

가와이 겐지가 아닌 칸노 요코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캐릭터 일러스트까지 너무너무 다르다!!

(쿠사나기 소령은 원작만화의 쭉쭉빵빵 매력녀의 모습을

TV판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이노센스>에 대해서는 따로 리뷰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여러 뿌리를 내딛게 된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2008

100% 디지털 복원과 수정을 통해 블루레이 플랫폼으로 새롭게 출시되는데,

놀랍게도 첫 부분의 쿠사나기가 자유낙하하는 장면과,

바다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장면이 100% CG처리가 되었다.

그래픽의 퀄리티야 아주 우수하지만,

문제는 되려 아날로그 냄세가 풀풀 풍기는 작품에 갑자기 디지털 CG

서로 섞이지 않은 짬짜면과 같이 어우러져 있어서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역시 매니아들인 이 장면에 대해 질타를 퍼부었고,

이에 블루레이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퇴보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참고로 이미 쿠사나기에 대한 CG 모델링은 TV판의 오프닝에서 시도되었지만,

아무래도 극장판에서는 CG화 자체가 전체적인 무게감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애니메이션 영상의 또 하나의 진일보를 기록했다는 이노센스. 저 실사같은 영상미를 보라>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다른 영화의 오마쥬가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쿠사나기가 자유낙하하는 장면, 너무도 유명한 이 장면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연출된 장면이다.

바로 뤽 베송 감독의 < 5 원소>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나온 것.

이에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이 존경하는 뤽 베송 감독에 대한 오마쥬라고 인정하였고,

뤽 베송 감독도 그러한 점에 감사하기라도 하듯

자신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존경한다고 하였다.

오시이 마모루에 대한 존경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터미네이터>로 인류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 제임스 카메룬 감독

역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극찬하였고,

<매트릭스>로 인류의 두뇌를 뒤흔들어놓았던 워쇼스키 형제 역시

<공각기동대>의 매니아라고 인정하며 수 많은 요소를

<매트릭스>에 그대로 따왔다고 하였다.

이제 대부분의 SF철학자들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류 최초의 고민을 보았고,

<공각기동대>를 통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진보적이고도 심화된 프로세스를 보았으며,

<매트릭스>를 통해 문제의식을 어떻게 대중에게 호소해야 하는가를 보았다.

이 계보를 이어 과연 다음 번에는 어떠한 작품이 탄생하여

또 한번 우리의 대뇌를 후려칠까?

이미 3개의 작품으로 자아정체성과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고뇌를

항상 대뇌에서 떨쳐버릴 수 없게 된 필자이다.

끝없이 고민하고 사색하고 연구하고 알고자 노력하여도 알 수 없는 영역,

바로 그 영역에 필자가 떨구어져 버린 계기가 바로 위의 세 작품인 것이다.

이미 빠져버렸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겠다.

이제는 이러한 사색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충고하겠지만, 맞는 말이다.

이러한 사색은 밥도 안 먹여주고 돈도 안 벌어다 준다.

하지만 필자는 재미있다.

어쩌면 두려움, 불안, 어두움의 단계를 벗어나 어쩌면 희망이라는 꿈을 가지고

보다 나은 존재로서의 전이를 위해 꿈꾸는

쿠사나기의 환영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픈 유어 아이즈'의 엔딩과 '제5원소'의 자유낙하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명 장면>

니체는 말하였다. “너 자신을 스스로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라고.

나 자신을 버리고 초인으로서 각성해야 비로소 참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제 여러분도 준비되었는가?

새로운 나로서 거듭나기 위해 두려움과 불안과 어두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posted by 미까 2009. 11. 6. 15:28

분닥 세인트 (The Boondock Saints)

세상은 악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살인, 강간, 강도 등 흉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무수한 발전을 해왔다지만 범죄에 대해서 만큼은

결코 나아진 부분이 없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인류는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고,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범죄는 더더욱 교묘해지고 흉악해졌다.

더욱이 법이라는 틀은 범죄를 근절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법이 정의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여 예부터 의적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법적으로는 분명 범죄자이지만, 그 의도나 목적은 정의로는 자들,

바로 로빈 훗이나 홍길동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겠다.

지금은 비록 법이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해져서

의로운 목적으로 죄를 저지른다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처벌의 대상이고, 또한 처벌되어 왔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나마

그러한 의적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돌파구를 만들어왔고,

그러한 여러 작품 중 그나마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해 알아보겠다.

바로 신의 이름으로 정의를 집행하는 두 형제의 활개극 <분닥 세인트> 되시겠다.

<"하나님의 빽으로!"라는 문구가 압권인 포스터. 이 영화도 하나님의 빽으로 만들었나?>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를 스토리부터 알아보자.

배경은 보스톤,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러시아계 마피아가 들들 끓는 나름 범죄의 도시이다.

이 곳에서 오늘도 열심히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훈남 형제들,

바로 맥마너스 형제들이 있다.

형 코너(숀 패트릭 프레너리)와 동생 머피(노만 리더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육류 냉동 회사에서 열심히 자투리 돈을 벌어가며 사는 젊은이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까지 성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단 퇴근하고 나면 근처의 단골 술집에 모여서 담배와 술에 찌들며

이탈리아 마피아의 쫄따구인 데이빗 델라 로코(데이빗 델라 로코)와 함께 웃고 수다떠는 인생.

그러던 어느 날, 단골 술집의 주인장 욕지거리 할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러시아계 마피아들이 강제로 나가라고 했다는 것.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마침 러시아계 마피아들이 들이닥치고,

이내 술집 안에서는 굴러들어온 돌과 박힌 돌 사이에 한 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다음 날 아침. 거리 골목에는 두 명의 마피아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다.

술집에 쳐들어왔던 마피아들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FBI에서 자칭

프로페셔널 폴 스멕커(윌리엄 데포) 수사관이 등장한다.

천재적이고 감각적인 수사로 사건의 전모를 쉽사리 파헤치는 그는,

이 사건이 우발적인 사고였음을 직감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감행한다.

<하루 아침에 성스러운 킬러라는 컨셉으로 총잡이가 되어버리는 두 형제>

늘 사건이 있으면 여론도 시끄러운 법.

그런데 이번에는 마피아 같은 악당들이 살해된 것인지라

여론의 반응이 무척 우호적이었다.

범인들을 성자라고 부르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멕커 수사관도 기가 찬 실정.

그런데 뉴스를 보던 맥마너스 형제가 부상당한 채로 경찰서에 와서 자수를 해버린 것.

황당하다는 듯 스멕커 형사는 그들의 살해 동기에 대해 물어보다가,

그들이 정당방위로 죽이게 되었고, 되려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아일랜드어 등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친구들이라고 눈여겨보게 된다.

결국 무죄로 풀려난 형제들은 그날 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쏟아진 빗방울에 세례 비슷한 푸닥거리를 받으며

신으로부터 정의를 행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큰 맘 먹고 법이 집행할 수 없는 어둠의 영역에서

정의를 수행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정의의 심판을 받을 대상은 정해졌다.

바로 자신들을 괴롭힌 러시아계 마피아의 두목.

맥마너스 형제는 정보를 수집하여 마피아들이 모이는 장소로 침투,

그리고 9명의 러시아 마피아 두목단들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죄현장으로 달려 온 스멕커 수사관은,

시체들의 눈에 전부 동전을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예사 사건이 아님을 직시한다.

예부터 죽은 자의 눈에 동전을 두는 것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뱃값을 지불해주는 의식임을 알고,

이는 범인이 단순한 동기가 아니라 무언가

숭고하고도 형이상학적인 동기가 있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단지 범인이 2명이라는 것만 알고,

누구인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스멕커 수사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사건 현장을 100% 맞추는 감각은 김전일이나 코난도 저리가라일 정도이다>

한편 첫 범행(?)에서 우연이었지만 놀라운 성과를 거둔 맥마너스 형제는,

범행 당시 자신들의 친구인 수다쟁이 로코를 만나게 된다.

로코가 왜 이곳에 왔나 싶어 추궁했더니,

나름 러시아계 마피아와 라이벌인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두목 야카베타(카를로 로타)

자신을 암살자로 보냈다는 것.

하지만 이미 상황은 맥마너스 형제들이 접수한 상태이고,

이들은 정의를 수호하는 새 삶에 환호를 부르게 된다.

하지만 로코가 등장했을 때 그가 가지고 있던 총이

6연발 리볼버였음을 이상하게 여긴 코너는,

이 모든 것이 야카베타가 로코를 일부러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충성스런 로코는 끝까지 이를 믿지 않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들의 아지트로 간다.

그런데, 결국 모든 것이 자기를 갖고 논 것임을 알게 된 로코는

그 자리에서 마피아 찌끄래기들을 골로 보낸다.

결국 살인자이자 조직의 배신자가 된 로코는 맥마너스 형제에게 도움을 청하고,

맥마너스 형제는 이제 정의 수호의 목표를 이탈리아계 마피아로 옮기게 된다.

그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뚱땡이 부두목.

남자들만 출입 가능하다는 므흣한 곳에서 열심히 쾌락의 순간을 탐미하고 있던 부두목은

맥마너스 형제와 로코에 의해 아랫도리도 걸치지 못한 채 인생 하직하게 되고,

아무 죄도 없이 옆 방에서 쾌락을 즐기려 했던 자들까지

쓰레기라는 명목으로 죄다 골로 보낸다.

역시 이번에도 스멕커 수사관이 등장하여 사건 현장을 검사하면서,

하나하나 단서를 캐가는 스멕커. 이제 범인이 3명인 것까지 알아챘지만,

대체 누가 정의의 탈을 쓰고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를 판이다.

서서히 스트레스에 쌓이기 시작하는 스멕커.

<시체들을 아주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쎈쓰까지 선보이는 맥마너스 형제>

한편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 야카베타는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은퇴한 두목에게 찾아가 자신과 조직을 보호해 줄 최후의 해결책을 요청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하고도 냉정한 킬러라고 불리어지는

희대의 살인마 일 듀스(빌리 코널리)를 감옥에서 끄집어내는 것.

이리하여 백발이 성성하지만 카리스마 지대로인 초강력 킬러 일 듀스가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맥마너스 형제와 로코.



자신들이 역으로 위험에 쳐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맥마너스 형제와 로코는 다시 또 다른 마피아 일당을 잡기 위해 그들의 은신처로 향한다.

그 곳에서 마찬가지로 싹쓸이 하고 기분 좋게 나올 찰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것은 바로 제대로 폼 잡아주시는 늙다리 킬러 일 듀스.

결국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뽑아 들고

영웅본색을 연상시키듯 쌍권총을 남발하며 총알로 벌집을 만들어댄다.

하지만 승부는 나지 않고 결국 자리를 뜬 주인공들.

어쨌든 또 한판의 사건이 펼쳐지자 스멕커 수사관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건을 추리하면서도,

대체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단서가 없어 거의 실신할 정도로 미쳐 날뛰게 된다.

그리고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찾은 곳은 바로 술집.

술에 진탕 찌들어서 비틀비틀 대다가

구토와 현기증 증세로 쑤시고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성당.

평소 신앙심이라고는 간의 코딱지만큼도 없던 스멕커는

개념 무탑재답게 고해성사실에서 그대로 뻗어버린다.

그런데 그 성당에는 마침 미사를 하러 온 맥마너스 형제가 있었던 것.

로코는 스멕커 형사가 자기들에게 위협이라 생각하고

고해성사실로 들어가 어찌하려는 판인데,

이번엔 그 모습을 보고 코너가 따라 들어가 반대로 로코를 협박한다.

상황이 이렇게 꼬인 상황에서 아직도 상황 판단 못하고

술김에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스멕커.

그 얘기를 조용히 들어보니, 죄를 짖고 다니는 놈들이 있는데,

얘네들이 하는 짓이 기가막히게 정의롭고 착한 짓들인지라

자기는 법을 집행해야 할지 그대로 봐야 할지 갈등이라는 것.

그러자 신부는 이미 주님의 뜻이 전해졌다며,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행하라고 한다.

이에 스멕커는 범인들이 정의롭다는 것에 동감하고 그들을 도울 것을 결심한다.

어쩌다 상황이 유리한 쪽으로 흐르자 맥마너스 형제는

이제 아예 스멕커 수사관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밤 야카베타를 작살내겠다고 얘기한다.

이에 스멕커는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은퇴한 두목을 찾아가서 정보를 캐내려다,

이미 야카베타가 함정을 파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냅다 야카베타의 저택으로 출동한다.

하지만 한 발 늦어서, 이미 맥마너스 형제와 로코는

야카베타에게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로코는 조직의 배신자라는 죄악으로 인하여 야카베타의 총에 눈을 감고 만다.

이에 절규하는 맥마너스 형제. 거의 초샤이어인 수준으로 돌변 직전이다.

로코를 죽인 야카베타는 아직 일 듀스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도 어쨌든 오늘 밤 쳐들어 올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이는 분명 자기네들에게도 피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저 도망가는 야카베타.

, 이제 스멕커 수사관의 활약이 기대되는데오잉?

등장한 꼬라지가 영락없는 여장 한민관?

나름 적들을 속인다고 매력적인 여자로 변장한건데,

사회적 통념상 용서받지 못할 꼬락서니지만 의외로 마피아들에게는 통해서

저택 안까지 무사히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갑자기 총을 꺼내 마피아들을 골로 보내며 맥마너스 형제를 구출하려는 스멕커.

한편, 스스로의 힘으로 겨우 수갑을 풀고 자유를 찾은 맥마너스 형제는

자신의 친구이자 고인이 된 로코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희대의 살인마 일 듀스였던 것.

그런데, 이게 왠 일?

맥마너스 형제의 기도를 듣던 일 듀스가 총을 조용히 홀스터에 집어 넣고서는,

기도문의 나머지 구절을 따라 외치는 것이 아니던가.

알고봤더니 일 듀스도 맥마너스 형제들 처럼 신의 이름으로

나름 정의로운 살인을 해왔던 것.

그래서 일 듀스는 맥마너스 형제를 자신의 동료로 인정하고

그 곳을 탈출하여 진정한 정의의 집행자로 거듭나게 된다.

이제 천군만마를 얻으며 진정한 삼총사로 거듭나게 된 이들은,

스멕커 수사관의 도움을 받아 야카베타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총기를 들고 나타나게 된다.

벌벌 떠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외치는 삼총사.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신의 뜻으로 악행을 단죄하겠다는 그들.

그리고 그 증거로 야카베타를 신의 기도 아래 처단하고 만다.

이 사건이 대서특필되면서 세상은 또 한번 여론으로 들끓게 되고,

여론은 그들을 정의롭다고 하는 자와, 그래도 범죄자라고 하는 자,

그리고 노 코멘트로 일축하는 자들로 나뉘어 우열을 가리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을 맺고 만다.

<도무지 이런 컨셉이었을 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 듀스. 마지막 반전이 더 대박>

이 영화는 전형적인 다크히어로물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인 다크히어로인 배트맨과 매우 유사한 구도를 따라간다.

하지만 배트맨은 신의 뜻이라든지 여론의 옹호라든지 하는 정당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자신은 자신의 과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고담 시를 지키기 위해 배트맨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은 끝없이 고뇌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번민이 늘 그를 괴롭힌다.

그렇지만 다크나이트 배트맨은 비록 법이라는 틀로부터 죄값을 받아야 하는 신세이더라도

그는 범죄자들을 어떻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리하도록 한다.

, 그는 스스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처벌하게끔 도와주는 역할만 한다.

반면 맥마너스 형제는 일단 정의의 사도로 거듭나게 되는 동기가 참으로 유별나다.

어쩌다가 때려눕힌 마피아들 때문에,

잠을 자다가 천장으로 새는 빗방울 몇 방 맞고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설정이라니.

신은 늘 정의를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라는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방법까지 총으로 쏴 죽이라는 말을 했을까?

어쨌든 맥마너스 형제들에게는 그렇게 들렸나 보다.

그러니까 평범했던 청년들이 하루 아침에 무장강도로 돌변하여 마피아들을 죄다 쏴 죽이지.

그러면서도 이들은 또한 어떠한 고뇌도 번민도 없다.

신의 뜻이라는 거룩한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되었든 신의 입장에서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은 모조리 죽인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처단의 결정권을 가진다.

, 완전히 법으로부터 분리된 자기 스스로 정당화하는 범죄자들인 것이다.

맥마너스 형제는 다크히어로 치고는 너무 극단적인 형태인 것 같다.

법을 완전 개무시하는 것도 아니꼽고,

자신들만 선량한 척 성스러운 척 하는 것도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네들은 신의 뜻을 수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정당할 뿐이다.

여기에서 살짝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예부터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신의 계시를 들었다고 한다.

꿈에서였든 어떠한 암시에서였던 그들은 모두 신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했노라고 한다.

그것이 다행히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내용이었다면

불우이웃을 돕거나 자선을 행하거나 기부를 하는 등의 정말 세인트(성인)이 되겠지만,

오히려 그 내용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그 대표적 예가 1974년에 발생했던 아미티빌 사건이 될 텐데,

일가족 6명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은 다름아닌 가족의 맏아들이자 오빠였던 것.

그의 살해동기는 신이 가족을 죽이라는 계시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알았겠지만,

신의 뜻이니 할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정당화시켰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쨌든 그는 범죄자로 기소되어 결국 그에 알맞은 죄값을 받았다.

<코너 맥마너스 역의 숀 패트릭 프레너리. 이때만 해도 에단 호크에 버금가는 간지남이었다>

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즉 인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가장 높은 구속력을 가지는 의무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신의 뜻은 그 법의 위에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뜻은 법처럼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물론 신의 뜻을 적었다는 성서를 비롯한 여러 종교적 사료가 있지만,

정말 꿈에서 신의 계시가 들렸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성서와 똑 같은 구속력을 가지는 것인가?

그리고 그 계시에 대한 옳고 그름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고

오로지 따라야만 하는 것인가?

필자는 종교에 있어 나름 주관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인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가 늘 궁금해하는 것은,

과연 신이라는 탈을 쓴 악마가 꿈 속에서

나는 신이다. 고로 너는 행하라라고 하면서 살인을 지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도 신의 존재를 믿지만, 그 신의 형태가 어느 종교에 귀의한 단 하나의 형태는 아니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신이다라고 말을 해버리면,

그것이 또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한 것이라면,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내가 그 뜻을 행하고 말고의 결정이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이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잇. 또 어려운 얘기로 빠졌는데,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아무튼 이 영화는 다행히도 철학적인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아주 상쾌하고 신선하고 후련한 쾌감을 주는 전형적인 킬링 타임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종교적으로 어떻고 하는 부분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감독 스스로가 그렇게 영화를 꾸몄으니까.

<동생 머피 역의 노먼 리더스. 여기서도 껄렁껄렁한 연기를 보이는데, 늘 그의 작품에서 그는 껄렁하다>

일단 이 영화는 총알을 아낌없이 퍼부어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액션영화라고 보는 게 좋다.

그래야 속 편히 볼 수 있다. 주인공들은 마치 만화의 캐릭터처럼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형제라는 점과, 성격이 극단적이라는 것도 그렇고,

결코 사생활이 깨끗하지는 않다는 것도 그렇다.

즉 껄렁껄렁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일본풍 만화의 캐릭터를 닮아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심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손에 새겨진 문신.

코너의 손에는 VERITAS(진리), 머피의 손에는 AEQUITAS(자유)가 새겨져 있다.

이는 다음의 구절에서 나온 단어로 여겨진다.

내 칼은 빛나고

내 손은 심판을 내린다.

기꺼이 적에게 복수하고

증오엔 증오로 되갚으니

주여, 나를 그대의

성인 중에 세우소서...

veritas~~~~~~

aequitas~~~~~~

읽으면 알겠지만, 내용 자체가 주인공들의 행각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과 동일하다.

, 주인공들의 독실한 신앙심을 증명하는 한편,

그들의 행위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문신은 단순히 이런 상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VERIATS AEQUITAS는 또 다른 문구와 함께 정의가 내려진다.

바로 EQUALITAS가 그것인데, 이는 평등이라는 의미이다.

, 자유와 진리와 평등이라는 3개의 뜻이 모여 조화를 이룬다.

고전에서는 이를 흔히 A.V.E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3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들은 끊임없이 외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이는 가장 숭고하고도 유명한 삼위일체를 뜻한다.

3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이다.

그런데 왜 진리와 자유만 있고 평등은 없는 것일까?

바로 그 나머지 하나가 막판에 일 듀스라는 캐릭터로 대변된다고 보면 된다.

비록 일 듀스는 주인공 맥마너스 형제처럼 손에 문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존재가 곧 평등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자와 아이는 살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는 평등이 아니라 차별 아닌가?^^)

<처음에는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았던 로코(가운데). 하지만 결말은??>

결국 막판에 3명은 삼위일체답게 하나로 뭉치게 되고,

더욱 극단적이고 과격한 형태로 신의 뜻을 집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이제 뉴욕으로 가서 활동무대를 넓히겠다고.

결말치고는 황당하지만, 감독이 10년 전 이러한 복선을 깔아놓은 탓에,

10년이 지난 2009년에 바로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룬

<분닥 세인트 2>가 개봉 예정이다.

삼총사는 그대로 등장하고, 또 한명의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된다고 하니

어떠한 상징이 또 펼쳐질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겠다.

배역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일단 주인공 역을 맡은 숀 패트릭 프레너리와 노먼 리더스는

결코 유명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연 역할을 해오던 인물들인데,

어쩌다 나름 매력적인 캐릭터를 쥐게 되었다.

감독인 트로이 듀피도 이 작품이 그의 처녀작인데,

배우들조차 메인캐릭터가 모두 처녀출전이었던 셈이다.

그렇더라도 감독의 연출과 구성도 좋았고,

배우들도 나름 좋은 연기를 펼쳐주었다.

단지, 그 이후 그렇다할 배역을 받지 못해서 지못미가 되었을 뿐.

일 듀스 역을 맡은 빌리 코널리는,

비록 이름과 생김새로 보면 숀 코널리와 유사해서 형제가 아닐까 싶은 오해도 사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고, 아무튼 나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필자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알고봤더니 <엑스파일 극장판>에서 신들린 신부로 연기한 바로 그 할아버지이다.

(필자의 엑스파일 극장판 리뷰를 참고)

이들이 나름 업계 유명세는 없었지만

당시 신선하고도 화끈한 배역으로 영화를 달짝찌근하게 만든 점은 아주 칭찬할 만 하다.

특히 은근히 일 듀스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감독이 어지간히 영웅본색 매니아였던 것으로 사료되는 문제의 그 장면>

그런데, 여기 의외의 인물이 캐스팅되었다.

바로 연기파 배우의 초고수 윌리엄 데포.

이미 플래툰에서 그 연기력을 확실히 선사하여

이후 징그러운 뼈다귀 면상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배역들을 맡더니,

이 작품에서는 그의 카리스마를 백분 발휘해주는 프로페셔널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막판에 여장으로 등장하여 보여주는 촌철살인적인 행위예술이란

그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반전!!

특히나 바닥에 나뒹굴다가 가발 벗겨지면서

총으로 마피아를 죽이고 벌떡 일어나는 장면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그 장면은

직접 보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스트랄한 명장면(?).

그리고 영화 중간에 호모를 암시하는 장면도 나오고,

마피아와 적나라하고도 진득하게 키스하는 장면은

정말로 윌리엄 데포가 얼마나 위대한 배우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최근에 그는

엄청 적나라하고도 충격적인 외설적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하였다.

여하튼 <스파이더맨>에서 처럼 감칠맛나는 악당으로 주로 활동하다

간만에 선한 캐릭터로 나온 몇 안되는 작품.

일단 캐스팅부터 스토리, 캐릭터까지 나름 신선한 이 작품은

도무지 초짜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트로이 듀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연출기법을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회상하는 장면과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을

시간상 일치해서 보여주는 연출인데,

스멕커 수사관이 사건의 전모를 하나하나 파헤치는 과정에서

마치 실제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옆에 있었던 듯이 등장하면서

똑같이 따라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기법은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코미디에서도 패러디될 만큼 매우 유명한 연출기법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트로이 듀피 감독 이전에 누군가 시도했을 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지식으로는 더 모르겠다.)

<겉으로만 보면 정말 불한당같은 놈들인데, 신의 빽을 쓴다니... 주변에 이런 놈들 있으면 일단 신고하자>

10년 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단비와도 같이 범죄를 처단하는

시원후련한 개념으로 등장한 분닥 세인트.

하지만 이후 인해전술로 영화계를 침범한 마블과 워너브라더스의 여러 히어로들로 인해

존재감마저 상실되었던 맥마너스 형제.

하지만 그 동안 뭐먹고 살았는지 궁금했던 트로이 듀피 감독이

정확히 10년 만에 그들의 정의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속편을 들고 나타났다.

이미 늙을 대로 늙은 3명의 핵심 캐릭터들이 과연 어떠한 활약을 보여줄 지 기대해보자.

2편 개봉하면 바로 감상한 후 리뷰를 올릴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