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9 (District 9)
<포스터부터 여타의 외계물과는 다르다는 포스가 느껴지는 디스트릭트 9>
이 드넓은 우주에 지적생명체는 과연 우리 인간밖에 없는 것일까?
혹자는 외계인으로 불리우는 다른 행성의 지적생명체가 있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외계인이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한다.
경험론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단연 후자의 입장이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존재함을 경험적으로 인지하지 않았더라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외계인이 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꼴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칭하는 존재가 외계인일 수도 있다.
그 형태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형태를 빌어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가 아는 외계인의 모습도 인간과 크게 다른 형태는 아님을 감안한다면
외계인이 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결코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되었든, 외계인이 있다고 믿어온 사람들에게 있어 외계인은 늘 미지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모습도 가지각색이고 성격도 가지각색이어서,
어떤 외계인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슴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지구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는가 하면, 어떤 외계인은 흉측한 모습으로
닥치는대로 인간들을 잡아먹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어떠한 외계인이든 선 또는 악이 극명하게 갈리는 형태였으며,
특히 인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아주 독특한 외계인 영화가 등장하였다.
지금까지의 외계인은 잊으라는 듯이 매우 오묘한 설정의 외계인들을 등장시켜버린 영화,
바로 <디스트릭트 9> 되시겠다.
미국 본토에서는 오래 전에 개봉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엄청 뒷북 때리며 개봉하게 되는 이 영화의 스토리를 먼저 살짝 알아보자.
<우주 최초의 외계인 집단 수용소로 기네스 북에 오른 디스트릭트 9, 믿거나 말거나>
영화의 시작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바로 비커스 반 데르 메르바(샬토 코플리)라는 인물.
MNU로 불리우는 외계인 통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어리버리 사내이다.
이 친구가 맡은 임무가 무엇이냐 하면, 디스트릭트 9으로 불리우는
외계인 집단거주지에서 거주하는 외계인들을 강제퇴거 시키는 것.
어째서 외계인들이 지구에서 집단거주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28년 전 지구에 불시착하여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에서 멈춰버린 우주선 안에서 대량의 외계인들이 발견되었던 것.
그들은 우주선이 멈춰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거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외계인들이 인간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충돌이 잦아지자
인간은 MNU라는 기구를 창설하여 외계인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외계인들의 수를 조절하고, 무기들을 회수하여 범죄를 막고,
신분증과 이름을 지어주어 인간처럼 통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인간들은 외계인을 프론(쓰레기를 좋아해서 쓰레기라는 의미를 부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외계인들이 거주하던 디스트릭트 9은 각종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어
더 이상 통제가 어려워지게 된 것.
그래서 보다 강력한 통제를 위해 디스트릭트 10으로 새롭게 이주할 정책을 세우고,
비커스를 총 책임자로 선망한다. 알고보니 MNU의 총수가 바로 비커스의 장인이었던 것.
비커스는 쿠버스 벤터(데이빗 제임스)가 이끄는 경호대원들을 이끌고
디스트릭트 9에 진입하여 외계인들로부터 퇴거명령서에 서명을 받는 업무를 수행한다.
비록 외계인들과 폭력 마찰을 빚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비커스.
<MNU에서 낙하산 인사로 프로젝트 총 책임자가 되어버린 어리버리 비커스>
한편 크리스토퍼라고 불리우는 외계인은 자신의 동료와 함께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년 동안 힘겹게 모은 어떤 액체를 테스트하던 것.
하지만 비커스가 몰려오자 비밀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몸을 숨기고 동료에게 절대 들키지 말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비커스의 집중 탐문에 동료 외계인은 흥분하게 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쿠버스의 총에 맞아 목숨을 달리 한다.
그리고 집 안을 집중 수색하던 중 비커스는 정체모를 원통을 집어들고 보던 중,
갑자기 뿜어져나온 액체에 흠뻑 젖고 만다.
이후 계속되는 구토와 어지러움증으로 몸을 가눌 수 없어 어리버리대다가
갑작스런 외계인들의 공격에 왼쪽 팔을 크게 다치고 결국 후퇴하게 된 비커스.
비록 한 쪽 팔을 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상으로 돌아온 비커스.
하지만 그의 신체에 이상한 변화가 발생한다.
코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검은 액체를 토해내는가 하면,
눈가의 주름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한 비커스는, 자신의 다친 팔의 붕대를 풀자
너무도 놀라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왼쪽 팔이 그만 외계인의 팔처럼 변해버린 것.
사건이 이 지경이 되자 갑자기 어디론가 강제 이송되는 비커스.
알고봤더니 MNU의 지하에서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계인들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하는가 하면,
외계인의 DNA로만 작동하는 무기의 작동 테스트를 하고 있었던 것.
결국 MNU는 비커스를 테스트하여 무기를 작동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그를 해부하여 인간의 외계인화에 대한 비밀을 파헤칠 궁리를 한다.
그리고 그 명령의 중심에는 바로 비커스의 장인이 있었다.
<당신 외계인특별대출 받고 돈 안갚았지? 당장 돈 내놓으슈, 안그럼 작살나니까>
해부대에 누운 비커스는 결정적 순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주를 감행하고,
쿠버스의 추적을 뿌리치며 은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외계인과 성관계를 맺어 돌연변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쫙 퍼지고
사람들이 비커스를 알아보기 시작하자 이젠 도망칠 곳도 없게 된 비커스.
결국 그는 자신이 그토록 쫓아내려고 했던 디스트릭트 9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이제는 고양이먹이마저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게 된 비커스.
사실 고양이먹이와 쓰레기는 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구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 타냐(바네사 헤이우드)와 가까스로 통화하여 사랑을 전하는 비커스.
하지만 전파추적으로 인하여 위치가 노출되고, 쿠버스는 디스트릭트 9으로 대원들을 급파한다.
또 쫓기게 되자 부랴부랴 도망치기 바쁜 비커스.
그러던 도중 비커스는 크리스토퍼의 집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크리스토퍼의 집 안에서 어마어마한 수준의 컴퓨터 장치들을 보게 된 것.
이는 모두 불법인데, 크리스토퍼는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커스의 팔이 외계인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게 되자
크리스토퍼는 비커스에게 가져간 액체통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알고봤더니, 비커스를 이렇게 만든 문제의 액체는 바로
28년 동안 움지이지 않고 있는 우주선의 에너지였던 것.
그리고 크리스토퍼는 28년 동안 공을 들여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비커스에게 우주선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치료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비커스는 크리스토퍼를 도와 액체를 되찾아 올 것을 결심한다.
이에 무기를 장만하려고 비커스는 디스트릭트 9 내에 거주하는 갱단을 찾아간다.
그런데 갱단의 두목은 외계인의 무기를 쓰고 싶어서 안달난 친구.
그래서 비커스의 외계인 팔을 잘라서 먹으려는 괴상한 소원을 빈다.
위기의 순간에서 외계인의 무기를 작렬하며 탈출에 성공하는 비커스.
결국 무기를 챙기고 MNU에 쳐들어가 지하 4층의 비밀실험실까지 당도하게 된다.
액체를 다시 회수하게 된 비커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쿠버스.
그런데 크리스토퍼는 실험실에서 그만 자신의 동료였던
외계인의 사체가 심히 훼손된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만다.
비커스의 충격요법으로 겨우 정신을 차린 크리스토퍼는 비커스를 도와 무사히 MNU를 탈출한다.
다시 디스트릭트 9으로 돌아온 두 생명체는 이제 에너지를 꽂아
우주선을 움직이는 절차만 남겨놓게 된다.
<사람 살려!! 사람....아, 아니, 반은 사람, 반은 외계인 살려~!!!!>
이때 비커스가 다시 한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바로 치료가 되는가?’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3년 걸린다는 답변을 하고,
이에 빡돌아버린 비커스는 크리스토퍼를 냅다 후려패고 자신이
직접 우주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이동형 셔틀에 시동을 건다.
아버지와 함께 작업을 해 오던 크리스토퍼의 아들 외계인은
졸지에 아버지만 놔두고 가는 꼴이 되어 난리를 피지만 이미 늦은 상황.
그런데 밖에서 지켜보던 쿠버스가 요격 미사일을 날리고,
결국 미사일에 맞은 셔틀은 지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몰려온 쿠버스 일당들에게 잡히고 마는 비커스와 크리스토퍼.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질 무렵, 갑작스런 공격으로 주인공들 태운 차량이 뒤집어진다.
알고봤더니 갱단 두목이 비커스를 잡기 위해 갱단을 출동시킨 것.
결국 싸움은 쿠버스의 경호대원들과 갱단들 사이의 싸움으로 전환되고,
이 틈에 낀 비커스는 갱단 두목에 붙잡혀 막 팔을 잘리려 할 찰나이다.
하지만 아직 셔틀 안에 숨어있던 크리스토퍼의 아들이 천재적인 두뇌를 활용하여
우주선의 시동을 거는 것에 성공하고, 그동안 숨죽여 있었던 외계인의 최강병기 로봇이
살아나면서 일단 닥치는대로 인간들을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겨우 목숨을 건진 비커스는 로봇을 타고 이제 쿠버스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도망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느끼고 크리스토퍼에게
‘다시 구하러 와줄 테니 참고 견디라’며 아까와는 반대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비커스.
하지만 도망치는 와중에 크리스토퍼가 죽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마음을 고쳐먹는 비커스.
결국 다시 발을 돌려 크리스토퍼를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돌진한다.
엄청난 공격을 받으며 힘겹게 막아서는 비커스.
그는 크리스토퍼에게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셔틀까지 호위해준다.
겨우 셔틀까지 도착한 크리스토퍼는 아들과 함께 마침내 성공적으로 우주선에 안착하게 되고,
드디어 출발 워밍업을 하게 된다.
<생명체를 먼지 하나 없이 날려버리는 최첨단 청소기를 들고 활약하는 비커스>
한편 지상에서 끈덕지게 싸우고 있는 비커스.
이제 로봇도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싸울 힘을 잃고 마는 비커스.
이에 썩소를 날리며 길고 긴 싸움을 끝내려는 쿠버스가 총을 들고 다가서는데.
그동안 코빼기도 안보이던 외계인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쿠버스를 산산조각내고 만다.
이에 겨우 목숨을 건진 비커스.
그리고 마침내 28년 동안 멈춰있었던 거대 우주선은 지구를 떠나게 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키버스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에서는 그를 옹호하는 입장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비커스의 아내 타냐는 그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직도 비커스를 잊지 못한다며,
그가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유일한 증거는 매일 집 앞에 놓여지는 꽃 한 송이라고 한다.
바로 쓰레기로 만들어진 꽃 한 송이.
다시 평화를 찾은 디스트릭트 9.
그곳의 쓰레기 더미에서 어느 한 마리의 외계인이
오늘도 열심히 쓰레기를 모아 꽃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꽃을 만드는 것처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온 집념의 외계인 크리스토퍼. 빨간 조끼가 압권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스토리의 외계물이다.
일단 외계인에 대해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없다.
인간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
즉 갈 곳 없어 수용소에서 난민을 이루어 거주하게 된 외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반 외계인에서
친 외계인으로 변화하는 격동적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도 외계인화라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를 통해서 말이다.
이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발상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외계인을 통해 보다 철학적이고 시사적인 내용을 투영하는
해학적 요소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있다 하겠다.
왜 외계인들은 집단 난민을 형성한 채 인간들에게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지역이 요하네스버그일까?
어느 정도 눈치까는 사람들은 이러한 설정이 바로 인종차별과 직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심장부이다.
남아공은 바로 얼마 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 차별이 이루어진 국가이기도 하다.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우는 인종분리주의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 곳에서 이번에는 인간과 외계인이 인종분리노선을 택하고 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인간들에 의해서. 여기에서 인간은 백인이고, 외계인은 흑인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비단 남아공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꼭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만도 아니다. 백인과 황인 사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같은 피부색이라고 해도 또한 국가와 핏줄, 종교 등등에 따라
인류는 서로를 차별하고 싸우려 한다.
<외계인을 차별하는 각종 금지판. 영화 내에서는 곳곳에 이런 표식이 붙어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극단적 해결책은 바로 내가 그들처럼 되어보는 것이다.
외계인을 통제하던 주인공은 우연한 사고에 의해 외계인으로 변화되면서
비로소 외계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비록 그는 투쟁을 통해 겨우 싸움의 끝을 맺지만, 반드시 투쟁 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사고가 필요하다.
실연당한 사람의 마음은 실연당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남의 입장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다른 두 존재간에 이해와 공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비커스의 투쟁적 노력은 이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한다.
엔딩 부분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각이 비커스를 통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인류는 비커스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역지사지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은 계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했지만,
반드시 폭력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간디도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종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서 바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얘기하고 싶다.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의 욕심을 위해 죽고 죽이고 하는 실정이다>
어쩌다보니 이 영화의 철학적 요점부터 집중적으로 얘기하였는데,
이번에는 영화 자체적인 면으로 들어가 보겠다.
일단 제작이 피터 잭슨이다. 이거면 말 다하지 않았을까?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세계 최고의 퐌따지 영화의 대가가 되신 분이시다.
해리 포터 100명이 달려와도 반지의 제왕 멤버들을 꺾기는 힘들 정도이다.
그만큼 볼거리에서 절정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그런데 피터 잭슨이 놀랍게도 판타지가 아닌 외계물을 들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바로 감독인 닐 블롬캠프에게 있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니, 그 동안 단편영화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남아공 출신의 감독이다.
그런데 피터 잭슨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2006년에 게임을 원작으로 한 <할로>를 함께 해보자고 제의하였었더랬다.
하지만 제작비 문제로 말짱도루묵.
그러다가 닐 감독의 2005년 단편작 <얼라이브 인 요버거>를 보고 삘받은 피터 잭슨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편영화를 만들자고 제의를 한다.
그 작품이 바로 디스트릭트 9인 것이다.
고로 디스트릭트 9의 원작은 사실 얼라이브 인 요버거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이 둘의 합작이 이토록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스토리도 빠방하고, 철학적 주제의식도 거창하며,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연출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도 특별해서,
초반부터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나열하며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풀어나가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이 보다 사실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리고 결말에서 채택한 약간의 슬픈 결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실 만큼 감동적인 것이 사실이다.
<상공에 저렇게 거대한 우주선이 떠 있다고 생각을 해보라. 실로 경이롭지 않은가?>
미국에서 개봉 당시 엄청난 파장과 흥행을 몰고 온 이 작품은
놀랍게도 출연 배우 전원이 거의 무명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주인공 역을 한 샬토 코플리는 재미있게도 얼라이브 인 요거버를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남아공에서나마 좀 유명하지 세계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대박을 쳤으니,
이로써 헐리우드에서 파워가 엄청난 스타급 배우들을 쓰지 않고도 대박을 칠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만큼 감독의 재능과 스토리의 탄탄함, 그리고 놀라운 연출과
상상력의 현실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외계인은 기존의 외계인과는 다른 모습도 많다.
일단 인간과 함께 지구상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맨 인 블랙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너무 황당할 정도로 엉켜 사는 모습도 아닌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외계인들은 자기네들의 언어를 쓴다.
그리고 자기네들의 본능대로 살아간다.
고양이먹이를 좋아하고 쓰레기를 좋아하는 모습은 지극히 외계인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외계인 언어와 지구인 언어가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소통된다는 부분은 조금 의아하다.
짐작컨데 주인공이 외계인 통역 전문자격증을 소지한 인물로 보여지지만,
아무튼 28년 만에 두 생명체가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솔직히 좀 어거지 아닌가 싶다.
<와방 재밌는 최첨단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비커스...가 아니라! 탈출 시도 중인 모습>
폭력적이고 육식을 좋아하는 외계인의 모습을 봐서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지만,
크리스토퍼가 보여주는 외계인의 습성은 오히려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화가 나지만 분노를 참으면서 주먹으로 벽을 치는 장면이라던지,
자신의 종족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원통해 하고 절망을 느끼고 하는 부분들은
완전 인간과 똑같다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러한 설정은 외계인도 감정이 있고 지적인 생명체로서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만든 장치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관객들이야 바보가 될 테니까.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편이
외계인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훨씬 쉬어지는 장점은 있다.
그래도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장치는 지나친 인간주의적 설정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그 이후의 모습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크리스토퍼는 돌아올 것인가? 비커스는 다시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여운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무언가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하면서 모호하게 끝이 나는 결말,
바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2탄이 나와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2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이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완성작이다.
더 이상의 사족은 필요 없다고 본다. 제작자와 감독은
이미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영화 내에 모두 담아두었다.
그들에게 있어 주인공이 나중에 어떻게 되어버린다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까.
<외계물 사상 가장 감각적이고 감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
우리 주위에도 외계인들이 많음을 잊지 말자.
못생긴 여자에게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자.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그들에 대한 편견은 그 자체가 바로 차별인 것이다.
내가 남들로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바꿔보자. 어쩌면 우리들에게
그들 중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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