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인 (9)
요 근래 필자를 아주 혼돈스럽게 만든 영화가 있었다.
분명 제목을 거론하고 작품에 대해 얘기를 들을라 치면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엉뚱한 내용의 이야기가 나와서
필자를 무아지경의 상태로 만들어버렸던 것.
그것은 바로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거의 동시대에 존재하였던 아주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췌 애들 만화인지, 어른전용 만화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순적인 설정의 작품>
문제의 그 작품은 바로 <9>. 영어로 발음하면 나인.
재미있게도 나인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2개였던 것이다.
이 중에서 필자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나인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뮤지컬영화 나인을 얘기했던 것.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에게는 애니메이션 나인보다는
뮤지컬영화 나인이 더 많이 인지된 현실이지만,
필자에게는 팀 버튼이라는 희대의 그로태스크 무비디렉터가 만든
애니메이션 9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더랬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제부터 그것을 살펴보자.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9. 유일하게 지퍼를 달고 나온 최첨단 누더기 인형이다>
역시 시작은 스토리부터이다.
때는 알 수 없는 미래.
고요하기 짝이 없는 어느 방에서 새로운 생명이 눈을 뜨게 된다.
껍데기는 싸구려 헝겊에, 팔과 다리는 오바로끄(오버락) 처리되어 있고,
눈은 카메라 렌즈 2개 붙여서 만든 듯한 허술한 생김새.
게다가 몸 한가운데에는 커다랗게 지퍼가 달려 주머니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었으니,
등 뒤에 숫자 9가 찍힌 인형, 바로 9(일라이저 우드)이다.
이제 막 생명체로서 눈을 뜨게 된 9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는 것.
자기 앞에는 어떤 영감님이 떡실신되어 있고,
창문에 펼쳐진 세상은 종말이라도 온 듯 폐허 그 자체였다.
9은 무당벌레처럼 생긴 반구의 물체가 눈에 들어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고개를 떨구다가 이내 자신의 뱃속에 집어넣는다.
목소리 고장이 났는지 말이 안 나오는 9는 길거리를 헤매다가 또 다른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
머리에는 촛불을 달고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니는 자신과 똑 같은 인형인 2(마틴 랜도).
2는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부품으로 탄생한 9를 보고 기뻐하며
자신과 함께 동료들에게 가자고 한다.
만물박사인 2는 부품을 이용해서 9에게 목소리를 찾아주고,
9는 자신이 가지고 온 이상한 반구형 물체에 대해서 물어본다.
2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물체의 형상이 같은 인형인 6가
매일 그리는 그림과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나름 인정도 많고 머리도 똑똑해서 만능발명가로 등장하는 2>
그 순간. 개뼉다구를 뒤집어 쓴 괴상한 괴물이 습격하고,
2와 9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다 그만 2가 괴물에게 잡히고 만다.
9는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지만, 도중에 떨어뜨린 반구의 물체는 괴물이 빼앗아가고 만다.
겨우 살아남은 9는 2를 살려야 한다며 괴물을 쫓아가지만, 이내 정신을 잃고 만다.
정신을 차린 9는 또 다른 인형들이 자신을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쪽 눈이 없는 애꾸눈 5는 9를 구해주고 그의 다친 팔까지 완벽하게 오바로끄 쳐준다.
이내 살아남은 인형들의 우두머리인 1(크리스토퍼 플러머)과,
그의 충실한 보디가드인 8(트레드 타타시오르),
그리고 이상한 말만 하면서 반구의 물체와 똑 같은 그림만 그려재끼는 6(크리스핀 글로버)이 등장하고,
9는 그들과 함께 인형이 총 9개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중 3, 4, 7은 행방불명이고, 2는 괴물에게 잡혀간 상태.
인형들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리더인 1은
막둥이 9에게 그가 깨어나기 전의 세상에 대해 설명해준다.
일찍이 인류가 존재하던 시기에 탄생했던 다른 인형들은,
본래 인류가 기계를 개발하여 전쟁을 치루다가 기계가 갑자기 인류를 공격하게 되고,
그 살육의 참극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숨어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오랫동안 숨죽여 기다려오고,
마침내 인간을 멸종시켰던 기계는 이제 잠들어버리고 다시 고요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
어쨌든 의리로 먹고 사는 9는 2를 구해야 한다며 괴물이 간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1은 계속해서 9를 무시하며 개죽음 말라고 한다.
끝까지 주장하는 9에게 감동한 5는 9와 함께 괴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이들은 괴물의 발자국을 따라 거대한 공장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선다.
<최신형 터미네이터인 개뼉다구 도그네이터 T-1000. 믿거나 말거나>
건물 안에서 새장 속에 갇혀 있던 2를 발견한 9와 5는 2를 구하려 하지만,
이 때 낌새를 눈치채고 달려온 개뼉다구 괴물에 의해 또다시 위험에 빠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갑자기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나타나니,
얼굴에는 새뼉다구를 쓰고 새처럼 날아 괴물의 대가리에 이별의 쌍곡선을 긋는 의문의 존재.
알고 봤더니 행방불명된 줄 알았던 7(제니퍼 코넬리)이었다.
서로 살아있음을 알게 된 일행은 기쁨을 나누지만,
호기심 하나는 또 먹어주는 9가 자신이 가져왔던 무당벌레형 물체를 들어서
어딘가 이것이 들어맞을 것만 같은 곳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들이대고 보는 9. 이를 보고 2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딱정벌레형 물체가 척 달라붙은 물건에서
갑자기 초록색 빔이 뿜어져나오더니 그 앞에 있던 2를 집어삼켜버리고,
2는 이내 영혼이 빼앗기듯 유체이탈의 퍼모먼스를 보여주며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는다.
이후 갑자기 붉은 빛을 발하며 움직이는 물건.
알고 봤더니 공장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덩어리 ‘머신’이었던 것이다.
이 기계는 갑자기 일행들을 보고 공격하고, 일행들은 죽어라 도망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뭐가 되었든 9의 잘못으로 인해 사태가 엄청나게 나빠진 듯한 분위기.
<조리개 0.8의 초고성능 렌즈를 자랑하는 머신의 눈깔. 안타깝게 줌 기능은 없다>
9는 5와 함께 7을 따라 그녀의 아지트로 가고,
마치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그 곳에서는 또 다른 인형 3, 4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원인을 설명해준 9는 3, 4로부터 영상기록을 통해 과거의 단상을 알게 된다.
국가의 수상이 적국과의 전쟁을 위해 기계들을 만들어냈고,
그 중에는 인공지능 기계인 바로 그 머신이 있었던 것.
머신은 무수한 기계병기들을 개발하여 전쟁에서 아군의 승리를 도왔으나,
갑자기 기계가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머신이 이끄는 기계군단이 승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공포와 비극의 원흉인 머신을 9가 깨어버리고 만 것.
9는 이 사실을 1에게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7은 1과 사이가 나쁜 나머지 그런 9를 무시한다.
결국 9는 다시 1에게 돌아와 위험을 얘기하지만,
1은 되려 9와 5를 감금하고 더 이상 사고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그러는 와중에 6은 9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며 쏘스(source)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편 다시 살아난 머신은 자신의 주업인 고철모아 터미네이터 만들기에 충실하여
또 하나의 괴상한 괴물기계를 만들어낸다.
그 기계의 목적은 바로 도망간 인형들을 잡아오는 것.
인형들이 아지트에서 숨어지내던 것도 잠시,
새 모양을 한 그 괴물기계가 들이닥쳐 일행들을 다시 위기에 빠뜨린다.
1과 8은 나몰라라 지들끼리 도망치고,
9와 5는 필사적으로 괴물기계를 쓰러뜨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때 또다시 7이 나타나 이들을 구하려 하지만,
이번에는 똑 같은 수가 안 통하면서 되려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숨어있던 다른 일행들에 의해 괴물 기계는 프로펠러의 재물이 되어버리고,
일행은 다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아지트였던 건물이 화재에 휩싸이면서 새로운 도피처로 이동해야만 하는 일행들.
한편, 가가멜과 사촌을 맺었는지, 인형에 대해 사족을 못 쓰는 머신은
또 다른 괴물기계를 만들어 인형들을 공략할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인간뼉다구 괴물기계는
오래전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 2의 모습을 하고 일행들 앞에 나타난 것.
이에 홀린 8과 1은 최면술로 인해 괴물기계의 재물이 되고,
괴물기계는 최면에 빠진 인형을 실로 돌돌말아
자신의 코브라 같은 뱃속에 집어넣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새뼉다구를 투구로 쓴 것까지는 좋은데, 마치 모기같은 저 포스는 무엇인가>
7과 9의 기지로 더 이상의 희생없이 괴물기계를 쫓아버렸지만,
이대로 안주해서는 안 되는 상황.
9는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만큼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며 머신에게 달려가 싸우자고 주장한다.
보수적 안전주의를 주장하는 1은 그런 9와 대립하지만,
일행들은 9를 따라 머신을 박살내기로 결심하고 드디어 행동에 옮긴다.
온갖 기계들의 감시를 피해 공장에 다다른 일행은, 조용히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9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하고,
나머지 일행들에게는 작전 실패를 대비해서 머신을 그냥 파괴시키라고 한다.
9는 인간뼉다구 괴물기계에 붙잡힌 일행 중 일부를 구출하는데 성공하고
괴물기계를 골로 보내지만,
머신은 화를 내며 일행을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해온다.
이를 피해 죽어라 도망쳐나온 일행은
마침 바깥에서 드럼통으로 폭파준비를 하고 있던 일행의 도움으로 무사 탈출,
그리고 공장과 머신은 이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화염 속에서 사라진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은 인형들.
폐허더미 속에 남아있던 축음기를 틀며 Over the rainbow 뮤직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 일행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머신을 쓰러뜨리고 평화를 쟁취하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 끝난 줄 알았던 머신이 살아남아서 다시 일행들을 공격하고,
일행들은 죽어라 도망치다가 다리가 끊어지면서
머신이 멈추어서는 바람에 일단 도망을 멈춘다.
하지만 이미 붙잡혀버린 6은 머신에게 영혼의 밥이 되어버리고,
6은 죽기 직전 9에게 쏘스를 찾으라고 알려준다.
반찬에 뿌리는 쏘스가 아님을 알아챈 9는
바로 자신이 최초로 눈을 떴던 그 방에 답이 있을 것임을 깨닫고, 다시 방으로 간다.
그 방에서 이것 저것 둘러보다가 자신의 설계도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깜놀하는 9.
그리고 이내 그 뒤에 가려져있던 박스 안에서 9를 위해 준비된
어느 한 과학자의 마지막 영상편지를 보게 된다.
<너는 설마..가위손? 가위손의 해골을 가지고 만들어서 그런지 가위질은 수준급이다>
영상편지의 주인공은 바로 떡실신되어 있었던 영감님.
이미 고인이 된 그 과학자는,
영상편지를 통해 과거의 진실에 대해 9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를 원했다.
과학자는 오래 전 자신이 어떤 놀라운 물체를 이용해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을 발명하게 되었고,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해 머신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기계를 창조해내었다.
하지만, 당시 수상이었던 독재자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머신을 대량무기개발에 악용하려 하였고,
이를 막으려던 과학자는 끝내 내침을 당하게 되었던 것.
결국 머신은 독재자에 휘둘려 이용되다가 스스로 인류를 적으로 규정하고
인류를 몰살하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자는 결국 그 악몽의 시작이 자기였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으로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은 9개의 인형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당벌레형 물체가 바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듣게 된다.
다시 머신 앞으로 달려온 9는, 머신에게 쫓기는 일행들을 발견한다.
정말 무섭도록 달려드는 머신.
더 이상의 도피도 어려운 상황에서, 일행들은 마침내 머신에게 잡히고 만다.
그 찰나에 9는 마지막 수단으로 무당벌레형 물체를 다시 빼야한다고 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1은 그간 고수해오던 보수적 안전주의를 버리고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고 하며 머신 앞에 선다.
머신이 영혼투영을 시도하는 찰나 9는 물체를 떼어버리는데 성공하고,
물체의 작동법을 완벽히 마스터한 9는
다시 영혼을 빼내는 기능을 작동시켜 머신의 영혼을 홀짝 빼내는데 성공한다.
결국 머신은 그대로 고철덩어리가 되고,
9는 물체 안으로 흡수된 나머지 인형들의 영혼을 하나하나 빼내주게 된다.
물체에 의해 육신을 버리고 영혼으로써 해탈한 5명의 인형들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구원한 9에게 미소와 작별인사를 던지며 그렇게 하늘로 승천하고 만다.
그리고 그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메말랐던 대지 위에 한 줄기 비를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고 그 빗방울 안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생명의 씨앗이 숨겨진 채 세상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인형들의 실질적 리더인 1. 하지만 늙은이답게 의심도 많고 소심하다>
애니메이션 치고는 스토리가 사뭇 무겁고 어둡다.
주인공 캐릭터가 인형이라서 13세 이하 관람가능 장난감 만화를 생각한다면 커다란 실수.
이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애들은 집에 두고 부모들끼리 와서 봐야하는 그런 어덜트 애니메이션이다.
이미 이러한 것은 팀 버튼이라는 전대미문의 엽기 기괴 괴상망측 천재 감독의 이름을 봤다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시츄에이션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 신부 등 아가들이 볼만한 주제를 가지고
결코 아가들이 헤헤헤 거리며 볼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이 감독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아가들이 봤다가는 울음보부터 터뜨릴 수도 있는
무섭고도 괴상망측한 애니메이션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 작품은 팀 버튼의 창작품은 아니다.
감독은 참으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쉐인 애커라는 초짜 감독.
그런데 어떡하다가 이 둘이 만나게 된 것일까?
본래 쉐인 애커는 단편 애니메이션를 주로 만들던 독립영화쪽 실력파였다.
그러다가 그가 2005년에 한 편의 센세이션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
바로 <9>라는 작품. 본 작품과 똑 같은 제목이다.
당시 11분짜리의 아주 짧은 러닝타임을 선보였던 동명의 이 작품은,
누더기 인형들이 등장하여 암울하고 비극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충격적인 스토리와 연출을 보여주었었더랬다.
당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영상을 접했던 전 세계의 많은 네티즌들은
그 작품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짧은 영상이었지만, 놀라울 정도의 완벽한 그래픽과 연출로 인해 모두들 탄성을 자아냈던 것.
게다가 인형이라는 귀여운 캐릭터와는 맞지 않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 때문에 사람들의 충격은 더 컸을 지도.
어쨌든 이 작품은 평소 괴상한 것만 좋아라한다는 팀 버튼의 눈에 쏙 들어왔고,
팀 버튼은 당시 <9>를 보고 자신이 본 최고의 단편 영화라는 호평을 하였다.
그는 이 작품이 보여준 놀라운 영상미와 세계관에 흠뻑 녹아내렸다고 평했을 정도.
2006년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던 만큼,
팀 버튼의 평가는 결코 과대평가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닐 것이다.
<왼쪽부터 쏘스달라고 조르는 6과 애꾸눈 5, 그리고 거품덩치 8과 주인공 9>
그런데, 이 작품에 홀라당 녹아내린 사람이 팀 버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원티드>로 현실파괴적인 놀라운 액션과 비주얼을 선보였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또 다른 재물이다.
기괴한 인형극의 달인과, 초현실적이고도 스펙터클한 액션의 거장이 만나
신예 쉐인 애커를 지원하여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 9.
이 정도면 정말 안보고 넘어갈 수 없지 않겠는가?
이토록 빠방한 제작진들이 내놓은 작품이니 작품 내적으로도 훌륭할 터.
일찍이 필자는 <월-E>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선사할 수 있는 놀라운 영상미와 더불어
심금을 울리는 주제의식과 스토리에서도 이미 한계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더랬다.
이 작품도 주제 측면에서는 확실히 월-E에 버금가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다만 시종일관 밝고 명랑한가와 어둡고 칙칙한가의 차이 정도?
나인(주인공 9와 제목이 동일하므로 헷갈릴지도 모르니 작품의 제목은 나인으로 하겠다)의 배경은
일단 미래이지만, 인간은 싸그리 멸종당한 그야말로 끝장을 본 세계이다.
적어도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희망으로 점철될 수 있는 소수의 인류가 살아남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단 인간은 없다.
인간멸종의 주범은 바로 기계. 이미 <터미네이터>에서 주의보를 때리고,
<매트릭스>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해버린 기계반란에 대한 공포가
이 작품에서는 이미 상황종결로 치달은 수준이다.
인류가 싸그리 씨가 말라버렸으니 정말 인류의 희망이라는 단어는
이 작품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
그렇다 해도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다.
비록 인류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생물체라고는 싸그리 멸종된 미래의 세계에서
다시 생명체의 부활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이 9명의 누더기 인형들이 선정된 것.
그 중에서도 늦둥이 9는 더더욱 희망의 마지막 불씨와도 같은 존재이다.
<3과 4는 비록 대사는 없지만 눈에서 비디오플레이가 된다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9명의 인형이 그냥 9명인 것은 아니다.
각 숫자에는 각각의 뜻이 있는데,
1번부터 순서대로 경험, 지능, 직관, 학문, 기술, 예술, 용기, 힘을 의미한다.
각 숫자를 가진 인형이 보여주는 극중 캐릭터의 특징을 앞의 의미들과 연결지어서 생각하면
왜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가 그런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캐릭터인 9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희망.
비록 인류는 멸종되어서 인류 문명만이 향유할 수 있다는 8가지의 소중한 자산을
8마리의 인형만이 가지게 되었고 이를 존속시킨다고는 하지만,
기계가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에서는 희망이 없다면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법.
이미 이러한 진리는 매트릭스를 통해 네오가 우리들에게 설파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인형을 만든 과학자가 매트릭스를 충실하게 봤는지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희망의 전도사를 탄생시켰고, 그가 바로 9였던 것이다.
머신이라는 가공할만한 인공지능 기계덩어리가
인류를 멸종으로 이끌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아마 기계의 반란을 주제로 한 작품치고 지금까지
정말 궁극적 목적인 인류말살을 성공시킨 기계는 머신이 유일할 것이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도, 매트릭스의 기계 우두머리조차도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바퀴벌레만큼이나 더럽게 박멸하기 힘들다던 인류를,
머신은 아주 소박한 공장 하나 지어놓고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의 한계이다 보니 스케일이 인형 몸땡이만큼이나 작을 수 밖에 없었다고는 해도,
이토록 눈부신 업적(?)을 세운 머신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이렇게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머신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작품에서는 친절하게도 인형의 창조주인 과학자가 인형 전에 만든 자신의 작품임을 설명해준다.
무당벌레형 물체를 이용해 바로 자신의 영혼을 집어넣어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원래 과학자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보니 머신도 처음에는 그랬더랬다.
그러다가 너무나도 순수했던 나머지 머신은 사악한 수상이 시키는대로 이용당하다가
스스로 어떠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해 악의 축이 되어버렸던 것일지도.
여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너무도 순수했던 나머지 너무도 악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컬한 기계의 모습이 연출된다.
<1.4 후퇴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비장한 후퇴를 감행하는 인형들>
이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애니매트릭스의 <세컨드 르네상스>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보다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애초에 인류를 대신하기 위해 탄생한 로봇은,
그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의해 가치관이 규정된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로봇은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 주인인 인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로봇은 이 규칙을 너무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논리적 오류를 범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의 주인이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라면,
로봇은 1원칙을 우선적으로 실천에 옮기게 된다.
즉, 주인을 살리기 위해 타인을 방어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도되었던 우연이든 타인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로봇은 1원칙을 위배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타인을 막지 않도록 행동할 수도 없다.
주인이 로봇에게 막으라고 명령을 내리면 더더욱 이는 혼란스러워진다.
왜냐하면 1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2원칙인 명령수행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다음부터인데,
어쨌든 1원칙, 2원칙을 충실히 지켜낸 로봇에게 인류는 처음으로 인간의 법을 적용해서 사형,
즉 폐기처분의 판결을 내린다.
이에 그 로봇은 3원칙에 근거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
비록 그러한 로봇의 행동이 2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하지만,
로봇은 끝내 결백을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모종의 가치관의 혼돈이 생긴다.
로봇이 적어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학습효과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에서
로봇의 3원칙이 불변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는 인간과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임을 알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를 적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매트릭스에서는 결국 로봇이 이 지경까지 이르지만,
그래도 그 로봇의 우두머리는 끝까지 인류와 대항할 생각은 아니었다.
먼저 인류와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민 것도 로봇 쪽이었지만,
싸움의 시작은 인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 vs 기계의 대결은 이제 그만, 인형 vs 기계의 초절정 기가톤급 대결을 그린 황당한 작품>
이 작품에서도 머신이 변질되는 계기는 바로 전쟁이었고,
또한 인류가 스스로 일으킨 전쟁이었다.
지능을 가진 기계라면 이러한 인간들의 어리석은 싸움질이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결국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류를 조용히 시켜야겠다는 것이겠지만,
순수했던 기계가 인류로부터 배우고 자란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전쟁 아니겠는가.
결국 인류의 전쟁을 잠재우기 위해 기계도 전쟁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인류를 잠재우고 만 것이다.
악은 악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던가?
아무튼 참으로 씁쓸한 내용이다.
마지막에서도 작품은 나름 해피엔딩 식으로 흐르지만,
그렇다고 100% 확실한 세상의 구원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이다.
인류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다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냉동인간이 있다 해도 이를 다시 되살려서 짝짓고 키우고 하는 여러 애로사항이 꽃을 피는데,
인형들만 남은 세상에서 무슨 수가 있겠나?
감독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대해 참으로 태고적으로 해결하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수긍이 가면서도, 어떻게 보면 약간은 얼렁뚱땅식 같기도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선택한 <우주전쟁>의 결말과 사뭇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부분에서
독창적인 결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9명의 인형이 왜 마지막 희망으로서 남겨진 것일까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자.
과학자는 머신을 만든 이후 또다시 인형들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9개를. 왜 그랬을까?
물론 마지막에 9가 나머지와는 다른 비범한 용기와 투철한 사명감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문제유발자도 9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과학자는 머신을 잠재우기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 인형들을 만든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이미 9가 탄생한 시점에서는 머신이 잠들어있지 않은가.
<입맛이 싱거워서 쏘스만 달라고 외치는 맛을 잃은 슬픈 인형 6>
그렇다면 9의 탄생 의의는 무엇일까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해석이 필요하다.
과학자가 마지막에 9를 위해 남겨놓은 박스의 내용을 들어보면,
9에게 머신을 멈추라는 미션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쏘스의 작동법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과학자에게는 문제해결과정에서 머신이라는 것이 전혀 무관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류가 멸종하고 나면 머신조차도 멈출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의 계산에 들어가 있었던 것.
그러면 9명의 인형은 무엇인가?
이제부터 자세히 따져보자.
쏘스의 기능은 영혼을 투영하여 어떠한 물체 안으로 흡수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혼을 빼낼 수도 있다.
머신은 영혼을 흡수하지만, 마지막에 9는 영혼을 해방시키는 기능을 작동시킨다.
여기에서 9가 행한 마지막 행위야말로 과학자가 의도한 정확한 사용법임을 알 수 있다.
9에게 그토록 강조한 올바른 작동법이 바로 영혼의 해방이라니.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5개의 인형의 영혼이 해방되고,
비가 내리면서 대지에 생명의 씨앗이 싹튼다.
즉, 생명의 부활의 매개체는 바로 인형들의 영혼이라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결국 과학자는 애초에 머신과는 별개로,
미생물이 듬뿍 함유된 유기농 빗방울을 똑똑 떨어뜨리기 위한
일종의 특수재료로 인형들의 영혼을 택했고,
그 인형들의 영혼을 하늘로 쏘아버리기 위해서 쏘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최후의 똘마니로 바로 9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고로, 9의 임무는 애초부터 나머지 8명의 인형의 영혼을 쏘스를 통해
하늘로 쏘아보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설정은 9가 처음부터 쏘스에 상당히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세상에서 유독 쏘스에 애착심을 가지고 이를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다시 회수했을 때도 머신에 끼어버리고 만다.
이는 9가 본능적으로 쏘스를 어떻게든 작동시켜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이 짓거리 때문에 머신이 깨어나 개고생을 하게 되지만,
덕분에 8명의 인형을 아무 근거없이 잡아다가 영혼으로 보내려다가
배신자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말이 되지 않았는가.
나인은 애니메이션 연출 부분에서도 상당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일단 우울한 미래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것.
팀 버튼이 11분짜리 원작에서 충격받은 느낌이 대단했다는 것만 알아두자.
그리고 이 작품은 그 11분짜리의 업그레이드된 작품임을 명심하자.
폐허가 되어 버린 쓸쓸한 미래의 세상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다.
어쩌면 이리도 사실적으로 묘사했을까?
그것은 과거에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던 도시의 실제 모습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으로 초토화가 되어버린 폴란드의 모습이 바로 그것.
제작진들은 완벽한 폐허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실제로
폴란드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지슬라브 벡진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2차 대전 당시 폐허가 된 유럽의 모습들을 보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누더기의 섬세한 질감 묘사와 뛰어난 광원효과 등 그래픽부분에서 거의 최고의 경지이다>
2차 대전이 차용된 부분은 배경 말고도 군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수상이 이끄는 군대의 복장이나 전투병기들이 2차 대전 당시의 독일군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기계로 만든 거대 로봇조차도 독일군스러운 디자인이 묻어난다.
그리고 국기에서도 독일군이 사용한
하켄크로이츠(나치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 깃발에서 나타나는
붉은색과 검은색, 흰색의 조화가 보인다.
모양만 다르지 색깔만 봐도 저건 독일군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독일군을 모델삼아 설정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인종 말상 정책이
작품에서 머신이 보여주는 끔직한 악행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이 되지만,
2차 대전 참상의 범인은 비단 독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본도 독일군 못지 않게 수많은 아시아인 및 전쟁포로들을 죽였는데,
서양인의 시각에서는 아무래도 유럽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진 독일의 만행이
더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작품을 한국이나 중국계 감독이 맡았다면 군대의 설정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스펙터클한 액션을 연출했다는 점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이 진보한다고는 해도 실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장엄하면서도
스피디하고 파괴적인 비주얼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데 그러한 한계를 살짝 뭉그러뜨리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것.
이미 원티드로 대박 터뜨린 티무르 베크맘베토브가 이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듯이,
그의 뛰어난 비주얼 감각이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7이 보여주는 호쾌하고도 빠른 닌자식 액션이라던지,
머신이 인형들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달려가면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액션,
그 외에도 여러 기계괴물들과 인형들간의 사투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이나 액션,
카메라 앵글 등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머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공포스럽게 느껴졌을 정도라서,
그 사실적인 연출력에 감탄을 토하고 싶다.
극중 잠시 평화를 찾은 일행들이 축음기를 통해
명곡 Over The Rainbow를 듣는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이다.
어쩌다가 평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곡이 울려퍼지노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물 찔끔, 감동 좔좔 쓰나미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모순적인 영상이 펼쳐진다. 음악은 감미로울 정도로 평화롭지만,
다시 살아난 머신은 인형들을 향해 공포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장면.
상황과 배경 음악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극한의 모순적인 장면은
그만큼 더욱 아찔하고도 비장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적 효과라고나 할까?
그런데 사실 이러한 연출은 이 작품이 최초는 아니다.
게다가 음악 선곡에서도 더더욱 그러하다.
일찍이 오우삼 감독의 명작 <페이스오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아지트에 급습한 경찰들과 케서방과 아이들간의
시골 시장터 같은 난장판 총격씬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영상과는 달리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대조적인 상황을 연출하였다.
나름 영화 연출기법 중 유명사례로 꼽히는 이 장면이 나인을 통해 고스란히 부활한 느낌인 것.
어쩌면 이는 오우삼에 대한 쉐인 애커 감독의 오마쥬일런지도 모르겠다.
<자석으로 흥분하는 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8. 이 친구 은근히 귀여워서 나름 매력이 있다.>
나인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면 화려한 더빙.
이미 디즈니에서 시작해서 헐리우드에서 아예 불문율로 만들어버린 유명배우의 더빙 작업이
이 작품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오른 느낌이다.
일단 주인공 9의 목소리는 이전 작품에서 너무나도 유사한 미션을 수행하며
불굴의 사명감을 보여준 무적호빗 프로도 역의 일라이저 우드의 목소리이다.
<반지의 제왕>으로 단숨에 초절정 인기스타로 떠오르더니
<씬시티>에서 목소리 하나 없이 괴물살인자 역으로 나와 연기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이번 작품에서는 목소리만으로 제대로 된 연기 보여주고 계신다.
9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5의 목소리는 존 레일리로,
뮤지컬영화 <시카고>를 통해 남우조연상 후보까지 오른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멤버 중 유일한 홍일점인 7은 인가와 담을 쌓고 지낸다는 제니퍼 코넬리.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과 똑똑한 두뇌에도 불구하고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연기를 펼쳐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존경스러운 배우이기도 하다.
원래 씩씩한 성격이라고 하는데, 재미있게도 7이라는 캐릭터가
평소의 자기와 너무도 닮아서 싱크로 100%를 자랑하는 더빙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할아비 목소리의 1은 크로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했는데,
그는 최근에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파르나서스 박사로 출연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업>의 촐싹대는 찰스 할아버지 더빙도 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본 트랩 대령 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도 이 분은 여전히 멋진 노년신사의 포스를 풍기는 분이다.
2도 사실 할아비라는 설정인데, 그래서 그런지 2의 목소리는 마틴 랜도가 맡았다.
이 분 역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명 배우이자 연기지도자로서,
제임스 딘이나 잭 니콜슨 등의 정말 후덜덜한 명 배우들을 조련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시종일관 입맛이 싱거운지 쏘스만 외쳐대는 6의 목소리는 크리스핀 글로버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이름을 말하면 모르지만 <미녀 삼총사>에서 머리카락에 환장한 변태 킬러라고 말하면
죄다 알아듣는 배우 되시겠다.
전작에서의 캐릭터와 너무도 다른 순둥이 목소리를 내서 상당히 의외로 느껴진다.
이 외에도 시종일관 “우우우우움~~”만 외치는 8의 목소리는
트레드 타타시오르라는 무명이 맡았다.
화려한 캐스팅과 연출, 비주얼 등등 요근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는 이 작품이 신기하게도 혹평도 많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헐리우드야 늘 평론이 갑론을박 수준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다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악평댓글도 많았다. 전개가 지루하다는 둥,
애들이 보기에는 너무 무섭고 어른이 보기에는 너무 단조롭다는 둥의 악평도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평은 아마도 팀 버튼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팀 버튼이 워낙 독보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다보니 이에 대한 반박도 많은 편.
쉐인 애커 감독으로서는 팀 버튼의 지지로 인하여
자신의 생애 최초의 장편 영화를 대박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이에 대한 혹평도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혹평보다는 팀 버튼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이득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받아랏! 에네르기 파!!!!!!!! 9의 자세가 일품이다. 과학자가 드래곤볼을 좀 본 듯>
개인의 원한으로 무고한 사람들이나 해치다가
결국 자기마저 쓰레기 신세되는 사탄의 인형 처키와 달리,
온 생명의 마지막 희망으로 탄생한 허접 누더기 인형 9명의 활약이
너무도 감동적인 어덜트 애니메이션 나인.
지금도 당신의 핸드폰 끝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누더기 인형이
언젠가 지구를 되살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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