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미까 2008. 5. 8. 10:28

현대캐피탈·현대카드 2008 부산국제모터쇼 참가



모터쇼에는 자동차만 있다?

현대캐피탈·현대카드, 자동차금융 대표 회사로 4년 연속 국제모터쇼 참가
Finance Shop 테마로 특별한 혜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설계
- 현대캐피탈: Finance Shop/ 오토인사이드/ PLUS+ 멤버십
- 현대카드: PRIVIA / 인사이드 서비스
방문 고객 대상 특별기프트 및 기념품 증정
- 평일(12시,4시) 및 휴일(11시,1시,3시,5시) 선착순 각 50명에게 디자인액자
- 부스 방문객에게 소정의 기념품

현대캐피탈·현대카드가 12일까지 부산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2008 부산국제모터쇼'에 참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로 할부와 리스, 세이브포인트 등 자동차 금융을 선도해 온 양사는 금융회사로는 유일하게 4년 연속 국제모터쇼에 참가, 자동차 관련 금융상품을 전시한다.

양사 '금융 전시관'의 디자인 컨셉은 회사의 CI를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한 파이낸스샵(Finance Shop)이다. 파이낸스샵은 광화문과 양재 등 전국10곳에 오픈한 현대캐피탈·현대카드만의 독특한 One-stop 금융서비스 공간이다.

현대캐피탈은 오토플랜과 클라스오토 등 상품 브랜드가 있는 브랜드 존, 파이낸스샵 존, 오토인사이드 존, 현대캐피탈 PLUS+ 멤버십 존으로 나뉘어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 브랜드를 전시하여 시선을 끈다.

현대카드는 자동차 관련 혜택이 큰 현대카드M 등 알파벳 카드와 독특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브랜드 PRIVIA 및 지역별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사이드 서비스 중 부산지역의 해운대존, 서면존을 전시한다.

평일(12시, 4시) 및 휴일(11시, 1시, 3시, 5시)에 현대캐피탈·현대카드의 금융 전시관을 방문하는 선착순 각 50명은 특별 선물(디자인액자)을 받게 되며, 모든 방문객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이 제공된다.

<사진설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가 12일까지 열리는 '2008 부산국제모터쇼'에 금융관을 설치하고 자동차 관련 금융상품을 전시한다. 방문객에게는 특별 선물(디자인액자)과 기념품이 제공된다.
(끝)



[2008-05-07 12:00]송고

출처 : 현대카드
※ 위 사진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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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까 2008. 4. 30. 19:32

분노의 핑퐁 (Balls of Fury)

한국 영화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있다면, 외국 영화에는 "분노의 핑퐁" 있겠다.

그만큼 분노의 핑퐁은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가져온 영화라고나 할까.


<당췌 이해가 쉽사리 안되는 포스터>

포스터를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예 2008 베이징올림픽 비공식 코미디라는 타이틀을 걸어 가공할만한 위력에 기대를 걸게 만든다.

대충 보면 3류 저질 코미디로 치부될 수 있으나, 등장인물을 보면 1류 영화 못지 않은 캐스팅을 자랑한다.

아시아에서 세계 스타로 발돋움한 매기 큐,

배트맨 2, 슬리피 할로우 등에서 두루 악역을 소화한 크리스토퍼 월켄.

드래곤에서 이소룡 역으로 분한 중국인 배우(이름이 생각 안남)까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쎈세이션!!

이 정도만 해도 벌써 이블데드에 버금가는 레벨은 도달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 작에서 처음 주연을 맡은 신인 애덤 밥로우는

지저분한 외모와 엉뚱한 몸개그로 나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 랜디 역을 맡은 애덤 밥로우>

#1. 스토리 - 탁구 천재의 파란만장 황당 스토리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88서울 올림픽 때 금메달을 조국에 안겨주리라 기대했던 탁구신동 랜디는

결승전에서 만난 독일 선수와의 대결에서 어처구니없게도 패배하고 만다.

아들이 이기리라 믿으며 배팅을 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패배에 죽임을 당하고,

이에 충격받는 랜디는 두번다시 탁구와 인연을 쌓지 않는다.
그로부터 수년 후 청년이 된 랜디는 어느 날 찾아온 FBI 요원에 의하여

세계 평화를 위해 탁구를 쳐 줄 것을 권유받는다.

황당한 제안에도 불구 랜디는 다시 한번 탁구채를 잡지만,

실력은 이미 과거가 된지 오래. 동네 탁구대회에서 보기좋게 망신당한 랜디는

FBI요원의 도움으로 전설의 탁구선생을 찾아가서 탁구를 배우게 된다.

동양적인 신비로 가득한 전설의 탁구선생은 랜디를 거부하지만,

탁구장에서 알바로 뛰는 매기 큐의 미모에 반해 열정을 쏟는 랜디에게 진정으로 탁구를 가르치게 된다.

랜디와 탁구스승의 공통 목적은 단 하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탁구귀재이자 악당 팽을 물리치는 것.

이를 위해 끝없는 노력 끝에 마침내 팽의 본거지에 들어간 랜디와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계속해서 사고를 몰고 다닌다.

그러던 중 과거에 자신을 농락했던 독일 선수를 다시 만난 랜디는

탁구에 대한 열정과 분노를 폭발시키며 팽과의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대결 방법은 데쓰매치. 탁구공을 놓치게 되면 감전이 일어나고

3번 이상 실패하면 고압전류에 의하며 목숨을 잃는 위험한 대결.

하지만 늘 그렇듯 선의 편인 주인공이 이기고 악당 팽의 몰락과 함께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뻔한 스토리.


<럭셔리 퓨전 빠숑 악당팽 역을 소화한 크리스토퍼 월켄. 악당의 모습이 이따구다>

#2. 그나마 웃을 거리가 있는 유머 코드

이 영화의 재미는 탁구라는 스포츠 소재를매우 엽기적이고도 지저분한 개그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쓰레기 개그와 상상을 초월하는 캐릭터 설정은 그야말로어쨌든 웃음짓게 만드는 가장 큰요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유독 한국의 영화애호가들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영화 시작부터 친숙하게 울려퍼지는 한글 음성 때문이리라.

재미있게도,영화 도입부의 설정은 88 서울 올림픽이다.

그래서 엑스트라를 비롯해서세트의 설정이 모두 한국식으로 되어 있다.

한글 신문도 등장하는데, 꼼꼼히 따져보았더니 한글 구성의 퀄리티도 꽤 높았다.

어쩌면 이 영화에 한국인의 영향력이 과시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건데, 유독 동양인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인지라

사실 그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재미있게도 악당 팽의 측근으로 등장하는 북한군 캐릭터가 있는데,

아주 능수능란하게 북한 말을 쓰는 것이었다!!!!

대사인 즉슨 "여기 화장실이 어데요? 오줌마려 죽갔시요" 대략 이렇다.

정말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웃음을 금치 않을 수 없는 대목이겠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영화 막판에 팽의 궁전이 무너지기 직전 도망치는 군중 들 속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FBI 요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야 이 병신들아. 폭탄이 설치된거 안보여? 빨리 도망치란 말야!" 대략 이렇다.

정말 데끼리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저질 미국 코미디 영화에서 한국인의 저력이 드러날 줄이야.

어쨌거나 간만에 킬링타임 무비를 건지게 되어 내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을 웃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섹시함으로 승부하려 했으나 빈약한 몸으로 인해 실패하고 만 매기 큐>

마지막으로, 왜 이런 쓰레기 영화에 매기 큐가 출연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나름 섹시하면서도 강인한 컨셉으로 배역을 이끌어가지만,

아무리 봐도 섹시함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신체조건으로 인하여 눈물만 글썽일 뿐이다.

덧붙여, 최근에 "삼국지 - 용의 부활"에 출연한 매기 큐의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태어나서 삼국지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어요"

posted by 미까 2006. 12. 13. 21:37

임청하 (林靑霞)

절세무공 "규화보전"에 의해 남성성을 잃어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 동방불패.

비록 남자였으나 막강무공의 대가로 점점 여성화되어가면서

적이었지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영호충으로 인해 결국 애절한 인생을 택하고 마는 동방불패.

무엇보다도 여성이면서도 남성적인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으며, 특히 뛰어난 무공실력을 겸비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절한 표정연기까지 가능해야 했던 이 까다로운 캐릭터를

가장 완벽하게 소화해 낸 사람이 바로 임청하이다.


<당시 이 모습을 보고 누가 39살이라 상상이나 했으랴!!>

동방불패의 역으로 일약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임청하.

그러나 그녀는 놀랍게도 동방불패를 찍던 92년에 39살이라는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도저히 마흔에 가까운 아줌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미모를 지닌 임청하는,

나로하여금 25살의 나이차이를 잊어버리고 그녀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이후 속속들이 무협영화에 출연한 임청하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장국영, 이연걸, 왕조현, 양조위, 유덕화 등과 함께

홍콩 무협영화의 새 역사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왕조현이나 공리 등의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임청하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주로 맡으면서

임청하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소는 사실 나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나 두 편의 영화에 걸쳐 동방교주로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였는 바, 이내 나는 동방교주님의 절실한

교도가 되기도 하였다.

임청하는 39살이었던 당시에도 미혼인 상태였다. 유명 배우 "진한"과 수많은 염문설을 뿌린 적은 있었지만

결혼까지 골인한 경우는 없었으며, 오히려 미혼이었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1994년세월 앞에 늘어만 가는 주름살이 원망스러웠던지

임청하는 결국 홍콩 에스프리 사장 "형이원"과 결혼하였고,

결혼 이후 연예계 활동을 전면 중지한 임청하는 현재는 슬하에 두명의 딸을 두고 있다.

임청하가 동방불패로 전아시아권의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할 때,

동방불패 2 홍보차를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에 특별출연하여 1시간에 걸쳐 아주 재미있고

특별한 시간을 보냈던 것도 상세히 기억한다.

특히 방송도중 동방불패 주제가를 직접 불러 화재를 일으켰고,

방송 중간중간 보여준 팬들에 대한 서비스는 정말 매력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 임청하의 모습. 역시 젊을 때 미모는 늙어서도 계속된다>

임청하의 대표작은 수없이 많지만, 동방불패만을 계속해서 얘기하는 것은

동방불패야말로 임청하를 있게 한 작품이고, 또한 그 작품속에서 보여준 것이야말로

임청하가 뿜어낼 수 있었던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일월신교에서 교주 임아행을 축출하고 자신이 직접 교주자리에 올라

묘족의 부흥을 위해 절세무공 규화보전을 익혀야만 했던 동방불패.

그것은 단지 자신의 사리사욕때문만은 아니고, 오히려 핍박받던 묘족의 애환을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한사람의 인간이었기에, 한사람의 여성이었기에, 자신을 동방불패가 아닌 한명의 여자로

바라봐 준 영호충에게 사랑을 느끼고 진심으로 그를 위하겠다고 결심하며, 마지막에는 결국

영호충의 칼날 앞에 쓰러져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

이후 동방불패 2 풍운재기에서는 동방불패 1의 중심이었던 흑목야 사건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사람들 기억속에서 동방불패의 흔적이 사라져 갈 때 쯤, 규화보전의 전설을 들은 여러 세력들이

규화보전을 찾기 위해 다시 동방불패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간 은둔생활을 하던

동방불패가 이에 분노하여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분신이었던 일월신교의

멸망과 동방불패를 원하는 자들에게 분노의 철퇴를 날림으로써 결국 허망한 세상과 세월을

탓하는 애절한 운명 속에 갖혀사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방불패 2 마지막에서, 자신이 내린 씨앗을 모두 거둬들이고 자신의 애첩이었던 설천심(왕조현 분)과

함께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던 풍운재기 주제가.

지금 다시 들어도 그 감동이 여전한 명곡이자 최고의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속에서 보여 준 동방불패의 마지막 모습처럼,

지금은 한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임청하는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지금은 두 아이의 평범한 엄마(할머니라고 해도 믿겠다)로서

남은 여생의 가장 황홀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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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까 2006. 12. 6. 19:25

야마우찌 미까 (山內 美加)

1994년 여름 내 인생을 뒤바꿀 운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야마우찌. 훗날 미까라는 이름을 알게 될때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어쨌거나, 예측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이 여인의 출현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관심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까지 해준 커다란 원동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실 야마우찌 미까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녀의 얼굴만큼은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녀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당시

눈물과 감동의 역전극을 일구어낸 여자 배구를 통해

한국에서 그 미모와 실력으로 일약 아이돌 스타가 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당시>

당시 백넘버 4번을 달고 왼쪽과 오른쪽은 물론 당시 아시아계 여자로서는

무모에 가깝다는 후위에서의 백어택을 밥먹듯이 터뜨린 갈색머리의 여전사였다.

미까는 단지 미모만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선수는 아니였다.

182cm의 놀라운 키에 높은 점프력, 그리고 발군의 공격 감각까지 고루 갖춘

그야말로 일본 여자 배구의 핵심이자 기둥이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배구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미까라는 인물은 그저 내 관심을 끌만한 미모를 지닌 여성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면 볼수록 그녀가 뿜어내는

강렬한 스파이크에 매료되었고, 이내 그것이 배구에 대한 관심으로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까는 무의식적으로 내 정신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내 모습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바없이

공경하는 대스타에 대한 동일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그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배구는 이제 나의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고,

미까는 나에게는 일종의 신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하물며 좋아하는 여성상까지 미까에 가깝도록 바뀌어버렸다고나 할까.

이후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들은 하나같이 배구와 관련이 있었던 특징이 있다.

<미까의 상징은 곧 백어택이었다. 그녀는 V리그에서 2년 연속 백어택부문 1위를 차지하였다>

미까가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후부터는 나는 미까의 모든 것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까는 한국에 온 적이 한번도 없었고, 때문에 한국에서의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나마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의 인기몰이로

국내 모 잡지에서 그녀에 대한 특별 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통해 미까라는 이름과 기타 상세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우습게도 이문세의 별밤에서 모 애청자가 미까의 팬이라며

팬레터를 보내기 위해 주소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덕에 나도 그 주소를 통해 2번의 팬레터와 겨울대비 목도리를

선물로 보낸 적도 있다.

야마우찌 미까는 92년에 23살의 나이로 처음으로 일본 여자배구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후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때 일본여자배구의 간판 스타인

오바야시 모또코(大林少子)와 함께 좌우 쌍포로 대활약하였으나,

한국과 중국에 연이어 역전패하며 눈물의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 다시한번 국가대표로 뽑히지만,

영파워에 밀려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채 대표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국가대표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치 못했지만, 클럽팀에서의 성적은

눈부실만하다고 할 수 있다.

미까가 소속된 다이에 오렌지 어택커즈는 94년에 프로로 발족된

일본여자배구 V리그에서 초대 우승을 거머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미까는 V리그를 대표하는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하면서

각종 TV행사를 비롯하여 화보집 촬영 등 빅스타에 가까운

인기를 실감하며 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화보집에 실린 미까의 평범한 모습. 운동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신하고 귀엽다>

그러다 97년 돌연 결혼을 선언하면서 미까는 배구인생을 접게 된다.

당시 2살 연하였던 프로야구선수 후지모또 준이치와 열애 끝에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녀는 결혼으로 인하여

배구를 비롯한 모든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하였다.

미까의 결혼은 내게도 커다란 정신적 충격이었지만,

그녀의 결혼사진을 어렵사리 구해 장면들을 바라보며

나는 진심으로 미까의 행복을 마음속 깊이 기원하였다.

<결혼 당시 모습. 평소 잘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미까의 보기 쉽지 않은 함박미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을 전설의 히로인, 미까.

그녀 덕에 나는 배구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게 되었고,

덕분에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 좋은 추억들, 그리고 좋은 인연까지.

만약 94년 당시 내가 미까를 알게 되지 못했다면,

내가 일본여자배구 준결승전이 있던 그날 밤 TV를 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까님.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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