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파일 : 나는 믿고 싶다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1. X-파일의 기원과 테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대뇌피질에 가공할만한 지식이 축적되어 갈 무렵에
세상 모든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시대적 통찰을 깨우쳐 준 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미드 계의 살아있는 전설, 바로 X-파일이다.
별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X-파일은
그 어린 나이에 그토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외계인, 초능력, 심령, 초자연 현상 등의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요소들을 과학적인 수사와 절묘히 조화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멀더와 스컬리로 대변되는 사건 해결계의 무적 커플의 모습은
너무나도 극명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사건을 풀어나가고
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계속해서 작품을 보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98년 X-파일이 처음으로 영화화되는데,
오랜 시즌을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멀더를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혀 오던 바로 그 외계인의 존재를,
그동안 존재를 부인해 오던 스컬리를 비롯한 X-파일 팬들에게 증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예 스컬리를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나 나올 법한 대형 UFO에 납치하는 수준까지 다다르는,
그야말로 더이상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지 말라는 항명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계기로 X-파일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새로운 시즌으로 접어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이야기는 또 베베 꼬이고 왜곡되어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고,
기어이 멀더와 스컬리가 쌩쇼를 하다가 FBI에서 짤리고 은퇴하는 사태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던 현재
그 새 10년이나 늙어버린 멀더와 스컬리가 다시 괴상한 주제를 가지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외계인일까?
<영화 포스터. 예전만큼 신비롭지는 않다>
#2. 스토리 - 나는 이 영화의 허무한 결말을 결코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 작품의 부제는 "나는 믿고 싶다"이다. 대체 뭘 믿고 싶다는 거지?
멀더는 늘 외계인이 자신의 여동생을 납치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언뜻 유추해 보면 혹시 이러한 사실과 연계되어 여전히 멀더의 히스테리가 판을 치는 것이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전혀 엉뚱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무엇을 믿고 싶어했고, 누가 믿고 싶어했는지를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멀더와 스컬리가 은퇴한 이후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FBI.
하지만 어느 날 미모의 젊은 여성 요원이 원인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FBI는 행방불명된 요원을 찾는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이는
황당하게도 자신이 환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늙은 천주교 신부.
어쨌든 묘하게도 시체나 사건 발생 장소를 때려맞추는 조 신부의 능력에
FBI는 어쩔 수 없이 그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문제는 과연 이 늙은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
그래서 FBI가 초자연 현상의 매니아 멀더의 협조를 요청하기로 하였다.
FBI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멀더의 환심을 사기 위해
FBI는 현재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스컬리를 찾아가서 부탁을 하게 된다.
가뜩이나 불치병에 걸린 남자아이를 살리는 데 스트레스 받고 있는 스컬리에게
FBI의 요청은 그야말로 왕 짜증.
그래도 옛 정을 생각해서 멀더를 설득하여 다시 FBI와 한 팀이 되어 사건에 협조한다.
조 신부의 신통한 재주에 관심을 가진 멀더는
계속해서 조 신부의 환상을 통해 사건에 다가가게 되고,
갈수록 그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진짜라고 믿는 스컬리의 완고한 고집은 여전하여
멀더와 조 신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실적에만 급급한 FBI도 초능력으로 사건 해결했다고 하면 자기네들 위신이 말이 아닌지라
조 신부를 달갑게 보지는 않는다.
그러던 와중 또 다른 여인이 납치되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조 신부가 과거에 성 범죄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멀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조 신부를 사기꾼으로 몰아 세운다.
그러던 중 얼음덩어리에서 찾아 낸 시체 쪼가리들을 통해
이것이 장기 밀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찾아 용의자를 좁혀 나가던 중,
결정적으로 걸려 든 범인을 쫒아 멀더는 추격전을 벌인다.
하지만 유유히 사라진 범인. 그리고 불치병으로 쓰러진 조 신부.
병상에서도 환상을 보았다는 조 신부였지만, FBI가 수집한 자료와 다르다는 이유로
멀더도 결국 조 신부를 믿지 않게 된다.
하지만, 쓰러지기 직전 스컬리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묘한 말을 남긴 조 신부의 말에 대해
스컬리는 그것이 자신에게 걸린 남자아이 환자의 수술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조 신부를 다시 보게 된다.
조 신부가 정말로 신의 뜻에 따라 환상을 보는 것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일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쨌든 아직 납치된 FBI 요원이 살아있다는 확신 아래 멀더는 범인을 추격하던 중,
범인과의 어설픈 드라이빙 격투 끝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멀더.
하여간 혼자 나서서 잘 되는 꼴을 못 보이는 멀더이다.
여전한 멀더를 걱정하는 여전한 스컬리.
결국 멀더는 스스로의 힘으로 범인의 사건 현장에 뛰어들고,
이 모든 사건이 죽어가는 범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한 괴상한 수술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치 나뭇가지를 서로 교접하면 나무가 살아나는 것처럼
사람의 머리를 떼어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붙이면 최소 1주일은 생존한다는 실험에 근거로 한 수술.
그리고 납치된 FBI 요원은 새 몸을 기증하기로 되어 있는 일종의 희생양이었던 셈.
어쨌든 결정적 순간에우리에게 대머리로 친숙한FBI 부국장과 함께 등장하여
범인을 때려눕히고 멀더를 구출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스컬리.
스컬리는 사건 해결의 중심에 조 신부의 조언이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마침내 깨닫고 만다.
하지만 사건은 늘 그래왔듯이 FBI에 의해 왜곡되어 공개되고,
초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한 조 신부는공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다시 환멸을 느낀 멀더는 두 번 다시 무료봉사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스컬리와 진한 키스를 나눈다.
<늙어서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멀더와 스컬리. 그런데 어느 덧 연인으로 발전했다!!>
#3. TV판과 영화판의 차이점 - 역시 TV가 낫다?
영화는 큰 기대와 달리 그저 TV 시리즈의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법한 이야기를
러닝 타임만 조금 늘려 할애한 수준이다.
외계인과의 좀 더 끈적한 관계를 원했다면 급 실망.
그래도 10년 동안 침묵을 지켜 온 멀더와 스컬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나름 가치는 있을 듯 하다.
이 영화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우선 멀더와 스컬리가 그토록 오래 일하면서도 연인사이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영화에서는 버젓이 연인 사이로 나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둘의 대화로 유추해보면 둘 사이에 자식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게 된 것 같은데, TV 시리즈의 후반부를 보지 못한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신선한 컨셉.
이제 둘의 키스는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 거리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컬리가 동성애자협회의 넘버 2 정도 된다는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이와 연계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범인의 범행 동기가 너무 괴상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야말로 엽기적인 수술을 행한 것인데,
그렇게까지 해서도 살리고 싶었던 그 사랑의 대상... 그것이 바로 남자라니.
범인은 동성애자였고, 동성애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한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아마도 스컬리는 이런 스토리를 은근 반겼을런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능력없고 융통성 제로인 FBI>
10년이 지난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TV 시리즈와 동일한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멀더는 여전히 초자연 현상에 목숨걸며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복수심에 자글자글 끓고 있고,
스컬리는 여전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없다며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철저한 객관주의자.
거기에 여전히 무능력하고 개념없는 FBI 요원들의 행태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발전 없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TV시리즈에서 주름잡았던 몇몇 미스테리한 인물들, 예를 들면 꼴초아저씨 라던지
이런 캐릭터들은 다들 늙어 죽었는지 아니면 외계인이 데리고 갔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나온다.
그래도 늘 뒤치닥거리하던 대머리 아저씨가 간만에 등장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감탄과 더불어 동정심이 물씬 부풀어오른다고나 할까.
<환상을 보는 조 신부. 이해가 쉽게 안 되는 캐릭터들간의 고리로 묶여 있다>
#4. 이제 직장을 잃게될 것 같은멀더와 스컬리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소재의 고갈이라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계인이 가장 적절했을 터이나, 얼마 전 인디애나 존스에서 이미 차용해 버린 탓에
소재의 신선함도 무척 떨어졌을 법한 상황.
결국 초능력과 엽기적인 실험을 아이템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약간 부족하다 싶었는지 범인과 범인의 애인, 그리고 조 신부의 괴상한 연결고리를 추가하였다.
조 신부가 젊었을 적 성범죄자로 명성을 떨칠 때
아동 성범죄의 피해자 중 한명이 바로 범인이 그토록 살리려는 애인이었던 것.
조 신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신의 뜻에 따라 그 피해자와 연결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췌 그 연결이 어떤 의미로 되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피해자의 용서를 빈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가 못 살게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조 신부.
우습게도 조 신부는 대가리만 남은 피해자가 숨을 거둘 때와 동시에
그 역시 숨을 거둔다는 설정이다.
결국 조 신부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신은 있다"라는 엉뚱한 결론.
그렇다면 결국 외계인은 있다고 믿는 멀더의 말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말일까?
멀더의 방 한켠에는 커다란 외계인 사진과 함께 "Want to believe"라고 쓰여 있는데,
여전히 멀더의 고집이 스컬리의 냉철한 논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영화의 부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비틀기] 뮤턴트 : 다크 에이지 (Mutant Chronicles) (0) | 2009.01.29 |
---|---|
헬라이드 (Hell Ride) (4) | 2008.09.22 |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Shoot `Em Up) (0) | 2008.05.19 |
삼국지 - 용의 부활 (三國志 - 見龍卸甲) (1) | 2008.05.16 |
88분 (88 Minutes) (0) | 200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