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우찌 미까 (山內 美加)
1994년 여름 내 인생을 뒤바꿀 운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야마우찌. 훗날 미까라는 이름을 알게 될때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어쨌거나, 예측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이 여인의 출현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관심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까지 해준 커다란 원동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실 야마우찌 미까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녀의 얼굴만큼은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녀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당시
눈물과 감동의 역전극을 일구어낸 여자 배구를 통해
한국에서 그 미모와 실력으로 일약 아이돌 스타가 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당시>
당시 백넘버 4번을 달고 왼쪽과 오른쪽은 물론 당시 아시아계 여자로서는
무모에 가깝다는 후위에서의 백어택을 밥먹듯이 터뜨린 갈색머리의 여전사였다.
미까는 단지 미모만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선수는 아니였다.
182cm의 놀라운 키에 높은 점프력, 그리고 발군의 공격 감각까지 고루 갖춘
그야말로 일본 여자 배구의 핵심이자 기둥이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배구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미까라는 인물은 그저 내 관심을 끌만한 미모를 지닌 여성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면 볼수록 그녀가 뿜어내는
강렬한 스파이크에 매료되었고, 이내 그것이 배구에 대한 관심으로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까는 무의식적으로 내 정신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내 모습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바없이
공경하는 대스타에 대한 동일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그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배구는 이제 나의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고,
미까는 나에게는 일종의 신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하물며 좋아하는 여성상까지 미까에 가깝도록 바뀌어버렸다고나 할까.
이후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들은 하나같이 배구와 관련이 있었던 특징이 있다.
<미까의 상징은 곧 백어택이었다. 그녀는 V리그에서 2년 연속 백어택부문 1위를 차지하였다>
미까가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후부터는 나는 미까의 모든 것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까는 한국에 온 적이 한번도 없었고, 때문에 한국에서의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나마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의 인기몰이로
국내 모 잡지에서 그녀에 대한 특별 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통해 미까라는 이름과 기타 상세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우습게도 이문세의 별밤에서 모 애청자가 미까의 팬이라며
팬레터를 보내기 위해 주소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덕에 나도 그 주소를 통해 2번의 팬레터와 겨울대비 목도리를
선물로 보낸 적도 있다.
야마우찌 미까는 92년에 23살의 나이로 처음으로 일본 여자배구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후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때 일본여자배구의 간판 스타인
오바야시 모또코(大林少子)와 함께 좌우 쌍포로 대활약하였으나,
한국과 중국에 연이어 역전패하며 눈물의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 다시한번 국가대표로 뽑히지만,
영파워에 밀려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채 대표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국가대표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치 못했지만, 클럽팀에서의 성적은
눈부실만하다고 할 수 있다.
미까가 소속된 다이에 오렌지 어택커즈는 94년에 프로로 발족된
일본여자배구 V리그에서 초대 우승을 거머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미까는 V리그를 대표하는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하면서
각종 TV행사를 비롯하여 화보집 촬영 등 빅스타에 가까운
인기를 실감하며 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화보집에 실린 미까의 평범한 모습. 운동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신하고 귀엽다>
그러다 97년 돌연 결혼을 선언하면서 미까는 배구인생을 접게 된다.
당시 2살 연하였던 프로야구선수 후지모또 준이치와 열애 끝에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녀는 결혼으로 인하여
배구를 비롯한 모든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하였다.
미까의 결혼은 내게도 커다란 정신적 충격이었지만,
그녀의 결혼사진을 어렵사리 구해 장면들을 바라보며
나는 진심으로 미까의 행복을 마음속 깊이 기원하였다.
<결혼 당시 모습. 평소 잘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미까의 보기 쉽지 않은 함박미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을 전설의 히로인, 미까.
그녀 덕에 나는 배구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게 되었고,
덕분에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 좋은 추억들, 그리고 좋은 인연까지.
만약 94년 당시 내가 미까를 알게 되지 못했다면,
내가 일본여자배구 준결승전이 있던 그날 밤 TV를 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까님. 정말 고마워요.
'Peop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량 (諸葛亮) (5) | 2008.05.26 |
---|---|
임청하 - 영원한 동방교주님 (0) | 2006.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