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셔 2 (The Punisher : War Zone)
#1.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깃든 노력형 히어로
학창시절 하교길에 필수 코스였던 오락실에서 필자가
단짝 친구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게임이 있다.
바로 2인용 횡스크롤 액션 게임 “퍼니셔”. 당시 필자로서는 가슴에
해골 마크 달고 터프한 인상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는
캐릭터에 묘한 매력을 느껴 퍼니셔를 굉장히 좋아했더랬다.
<옛날에는 백골 마크가 하록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이제는 퍼니셔의 것으로 대체된 듯>
어디서 이렇게 멋진 캐릭터가 나왔을까 하고 궁금증을 실증적 차원에서 접근해 본 결과,
히어로 대량 생산 공장인 마블 코믹스의 제품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블 히어로 하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엑스맨,
데어데블 등 인도의 신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히어로들로 유명하다.
그런 슈퍼 히어로 들 속에서 퍼니셔는 조금 다른 개성과
컨셉을 가지고 있었던 몇 안 되는 히어로.
퍼니셔는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도 없을 뿐더러,
지구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계인도 아니고, 아이언맨 처럼 초특급 갑부도 아니면서,
남들처럼 가면이나 쓰고 다니면서 상판떼기를 숨기는 이중적인 캐릭터도 아니다.
그저 우리네와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도 당당히
히어로 리스트에 들어간 후천적 노력형 히어로인 셈이다.
어째서 이렇게 후천적 노력형 엘리트가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처절할 정도로 비참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저항 때문이다.
남들은 갑부라서 돈지랄 하기 위해 재미삼아 히어로를 한다지만,
퍼니셔는 억울하게 살해당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복수심 하나로
세상 모든 악당들을 때려잡는다는 파격적이고도
철밥통 같은 독고다이 인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블코믹스 원작에서의 퍼니셔. 다시한번 말하지만 악당이 아니라 어엿한 히어로 주인공이다>
그렇담 짤막하게 원작의 퍼니셔를 리마인드 해보자.
재미있게도 원작에서는 퍼니셔에 대한 배경 설명이 거의 없다.
처음부터 묻지마 해결사로 등장하는 컨셉이었기 때문에,
원작 내내 오로지 악당 쓸어버리기에만 전념을 다하는 시퀀스를 보여주었다.
방금 전에 히어로라고 했지만, 사실 원작만 놓고 보면 악당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는 것 외에는 히어로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없다.
왜냐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악당들도 다 처자식이 있고 소중한 목숨일진데 일단 퍼니셔한테 걸렸다 하면
콘택600..이 아니라 무조건 황천길이기 때문이다.
허구한날 인상만 쓰고 시거 피워대며 다니는 무차별 총지랄 중년남성의 이미지 외에는
이 인간이 왜 이런 잔혹한 청소부가 되었는지, 과거에는 뭐로 먹고 살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해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한 인물이다.
무차별 무자비 독고다이 인생이기 때문에 이걸 히어로라 불러야 할 지
살인마로 불러야 할 지 애매한 것이다. 마블코믹스의 전형적인 연출 기법으로,
간혹 각기 다른 히어로들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작품 속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퍼니셔의 경우에는 스파이더맨과 겨루기도 할 정도로 무언가
개운한 구석은 없어 보인다. 100% 순도높은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눈에는 퍼니셔도
일종의 악당으로 보일 뿐이었고, 퍼니셔는 일단 자기 일에 끼어드는
놈들조차 다 쏴죽이는 버릇이 있어서 스파이더맨을 방해물로 여기고 죽이려 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가장 완벽한 몸매를 선보여 준 2대 퍼니셔 토마스 제인. 연기도 나름 괜찮았다>
어쨌든 밝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연쇄살인범스러운
아저씨의 일대기는 나름 성공을 거두어 헐리우드의 필수 코스인 실사화를 거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무려 2번의 재탕을 거치는 사골국 신세가 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람보와 쌍벽을 이루던 돌프 룬드그렌이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세워 최초의 퍼니셔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2004년에 크리스토퍼 램버트랑 비슷한 안면을 자랑하는 토마스 제인이
리메이크 버전의 주인공이 되어 남다른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에 또다시 재탕하기에 이르러 <퍼니셔 : 워존>이라는 작품이 제작되기에 이른다.
<돌프 룬드그렌의 오리지널 퍼니셔. 생각보다 원작과 싱크로율이 꽤 높다>
오늘 필자가 평하고자 싶은 작품은 3편의 작품 중 가장 괴이한 결과물을 보여준
<퍼니셔 : 워존>이다. 최신 개봉작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이 작품 대단히
독특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겠다. 비록 매번 우려먹은 스토리이지만 다시 한번
이번 작품에서 그려진 스토리를 나열해 보겠다.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마피아계의 거장 빌리 루소(도미닉 웨스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거만한 자세를 보이며 마피아 모임에 등장한다.
영어를 야매로 배워 영어 발음이 쥐약인 링거 투혼의 대부 앞에 선 빌리는
러시아 마피아가 생물학 무기를 부두를 통해 들여오려고 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짓을 도와서 돈 좀 만져볼 예정이라고 한다. 신이 난 대부와 빌리,
그리고 똘마니들은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 앞에 앉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온 불청객 퍼니셔(레이 스티븐슨)에 의해 순식간에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만다.
<지하철 노숙자로 전락한 퍼니셔. 피흘리고 중무장한 괴인이 지하철역을 활보해도
그 누구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
나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마피아 일당을 숙청하는 퍼니셔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빌리와 그의 똘마니들을 놓치고 만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퍼니셔 앞에 나타난 것은 계속 퍼니셔를 잡겠다고
나불대고 있던 잠복근무 중인 형사. 일촉즉발의 위기지만, 사실 이 형사는
암묵적으로 퍼니셔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 덕분에 빌리가 도망친 곳을 알게 된 퍼니셔는
빌리를 쫓아 그의 아지트로 간다. 아지트에서는 나름 숨 좀 돌리게 된 빌리가
똘마니들과 함께 다른 작전을 구상하지만, 휴식시간조차 주지 않는 퍼니셔에 의해
또다시 아지트는 쑥대밭이 된다. 그런데 퍼니셔가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숨지게 한 첫 번째 희생자이자 빌리의 오른팔 격 똘마니가 알고보니
FBI가 빌리를 잡기 위해 심어놓은 비밀요원이었던 것.
후회도 잠시, 결국 모든 똘마니들을 지옥행 급행열차에 태워보내고
빌리마저 유리병 분쇄기계로 던져버린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FBI 요원을 죽인 죄책감에 끙끙 앓는 퍼니셔.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빌리가 안면리모델링을 성공리(?)에 마치고 현업에
복귀했다는 소식에 자신이 죽인 FBI 요원의 가족인 안젤라(줄리 벤즈)와 그의 딸을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어느 누가
방긋 웃으며 받아주겠는가? 결국 문전박대당하며 용서를 빌 기회도 얻지 못한 퍼니셔는
그 길로 빌리의 뒤를 밟아 질긴 인연을 끝내려고 한다.
한편 얼굴 개조하고 이름도 직쏘로 바꾼 빌리는 자신의 든든한 서포터즈인
친형 래니 빈 짐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킨다. 이후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형제애를 선사하며 퍼니셔 하나만을 죽이기 위해 온갖 복수의 장치를 마련하는데,
우선 자금 마련을 위해 안젤라의 집에 침입해 안젤라를 인질로 삼고 돈을 챙기려 한다.
<썩소를 날려주고 있는 빌리 루소, 그리고 의외로 심플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똘마니들>
한편 직쏘의 똘마니 중 한명을 처리하고 퇴근하려던 퍼니셔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특파된 FBI 요원 버디안스키(콜린 샐먼)에게 걸려 쇠고랑 신세가 된다.
하지만 안젤라가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버디안스키 요원이 안젤라의 집으로 달려가
영웅 행세를 하려고 시도, 그러나 역시 조연답게 싱겁게 인질이 되고 만다.
퍼니셔의 숨은 조력자였던 FBI 요원 소업은 퍼니셔를 풀어주고,
퍼니셔는 역시나 이름값하며 간단하게 진압을 한다.
퍼니셔의 포스에 홀딱 반한 안젤라와 딸래미는 그 길로 퍼니셔의 아지트인
지하철 보일러실로 몸을 숨기고, 퍼니셔는 슬슬 은퇴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쇠고랑 신세였던 직쏘와 래니의 또라이 형제들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계획하고 있는 생물학무기 밀반입 사건을 해결하려는 FBI와의 협상으로
사건 해결을 대가로 자유의 몸이 된다. 또라이 형제는 퍼니셔를 죽이기 위해 도시의 모든 갱단을
단합하려는 궐기 대회를 열고, 퍼니셔의 무기공급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인
마이크로칩(웨인 나이트)를 협박하여 퍼니셔의 소굴로 쳐들어가 안젤라와 딸래미마저 납치해간다.
이후 후줄근한 호텔을 한 채 빌려서 무장 갱단들을 집결시키고
꼭대기층에 안젤라와 마이크로칩을 인질로 두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는 또라이 형제.
<얼굴 리모델링에 대만족(?)하는 직쏘. 얼굴 바꿨다고 이름까지 바꾸냐?>
나름 정의감에 사로잡혀 신세진 빚을 갚겠다는 버디안스키 요원은
러시아 마피아의 대부를 꼬셔서 직쏘가 모은 갱단 똘마니들을 대신 청소하게 만든다.
그 틈을 타 호텔로 무단 침입한 퍼니셔는 똘마니들 모두 사이좋게 보내주시고,
마침내 인질극 앞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인질로 잡혀있는
안젤라와 마이크로칩 사이에서 고뇌하는 퍼니셔. 과연 누구를 살려야만 좋을까?
결국 퍼니셔는 자신의 뚱땡이 동료를 희생하는 대신 여자는 살리고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고, 아주 싱겁게 끝나버리는 최후의 결전.
그렇게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어둠의 히어로 퍼니셔는
그렇게 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자,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나름 흠잡을 데 없는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왜 이 영화를 필자가 괴이한 작품이라고 칭했는 지에 대해 이제부터 파헤쳐 보겠다.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는 주름살 투성이 퍼니셔. 설정상 은퇴를 고려한 시점으로 보인다>
우선 등장인물들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주인공인 퍼니셔부터 건드려보자.
2004년작 퍼니셔와 동일선상에서 이해하자면 초장부터 실수이다.
2004년작 퍼니셔는 이제 막 퍼니셔로 각성한 전직 FBI 특수요원 프랭크 캐슬을 보여주고 있다.
친절하게도 영화 초반부에 가족을 억울하게 잃고 겨우 혼자 살아남아
복수심에 불탄다는 배경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젊고, 강인하고, 그러면서도 아직 자신의 복수심에 대한
선과 악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내면적 갈등에 시달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번 퍼니셔는 2004년과 2008년의 4년이라는 공백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파삭 늙어버렸다.
퍼니셔 역의 레이 스티븐슨의 실제 나이가 올해 46살(65년생)이다.
결국 전작에서 10년 이상 지난 시대적 배경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늙어버린 퍼니셔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전작의 토마스 제인이 너무 젊어서 원작의 인상 더러운 아저씨 삘이 전혀 안 살았지만,
레이 스티븐슨은 적절히 그 느낌을 뿜어내주고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육질 하나 없는 중년 아저씨는 좀 아니지 않은가?
리쒤 웨폰에서도 그러했듯이, 세월의 무력함에 굴복해야만 하는 히어로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한다고 치자면, 것두 좋다.
하지만 캐릭터 문제는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더욱 과감하게 나타난다.
<어디서 본 건 참 많아가지고, 별의 별 총지랄을 다 한다. 일명 전등에 거꾸로 매달려 360도 회전풍차샷>
악당이 가장 큰 문제이다.
2004년작의 악당이었던 하워드 세인트(존 트라볼타)는 나름 악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프랭크 캐슬이 현직이었을 때 임무 도중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것.
이에 격분해 세인트 역시 복수의 차원에서 프랭크의 가족을 몰살했던 것이다.
참으로 얄궂게도 복수가 복수를 낳은 운명이었던 셈이고,
그 시작은 바로 프랭크 캐슬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악당과 주인공 간의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복잡한 연결고리 속에서
아주 끈적하게 풀어나갔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의 악당인 직쏘와 비니 또라이 형제는
그야말로 노홍철 저리가라의 돌+아이 정신을 백분 발휘하는 개그 캐릭터로 나오고 있다.
퍼니셔와의 질긴 인연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저 퍼니셔가 그의 본업에 충실하던 중 재수없어서 놓친 악당 중 하나일 뿐이다.
나름 직쏘도 복수라는 컨셉을 들고 나오지만, 그 복수가 세인트의 그것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쌩얼(잘 생기지도 않았다)을 리모델링하게 했다는 이유 하나.
이름도 직쏘로 바꾸다니, 이건 뭐 지가 쏘우의 매니아라도 된단 말인가?
온갖 똥폼 잡으면서 징그러운 얼굴 비추면서 내뱉는 대사
“빌리는 죽었어. 이제부터 나는 직쏘다”에서 필자는 그만 대략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삼류 B급 엽기호러물을 보는 듯한 시퀀스. 이 또라이 형제들만 나왔다 하면 뿜을 준비 하시라>
또 다른 악당인 직쏘의 형 래니 빈 짐은 더 심각하다.
처음에는 엄청 대단한 악당인 것처럼 나온다.
어찌나 흉악하고 엽기적인 살인마이길래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온 몸이 꽁꽁 묶여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멍때리는 표정 하며.
그야말로 초반 컨셉은 양들의 침묵의 닥터 한니발에 버금가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멍때리는 표정이 풀리자마자 또라이 근성이 나타나고,
이후부터는 그저 노홍철 같은 아이 보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실소를 터뜨리며 보게 된다.
짝달막한 키에 번쩍이는 대머리, 노홍철스러운 페이스,
그러면서도 온갖 아양과 애교섞인 말투와 표정. 거기에 더해 틈만 나면 악력기를 가지고
손운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상태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KTX 열차.
악당이 이 정도인데 다른 떨거지들도 나을 것은 없지 않겠는가.
나름 강렬한 인상과 카리스마로 퍼니셔와 긴장감넘치는
갈등구조를 그려나갈 것만 같았던 버디안스키 요원도 어찌나 퐝당한 자태를 보이던지.
나름 진지하게 경찰차에 올라 퍼니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상하던 중
퍼니셔가 옥상에서 떨어뜨린 직쏘의 똘마니를 보고 “Oh~ Shit!!”하는 장면에서
필자는 그만 뿜어버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일관성 떨어지는
캐릭터들의 유치찬란한 행각이란 말인가? 나름 범죄적 포스를 뿜어내겠다는
마피아들의 자태도 어찌나 우습던지, 옹박의 목소리 마이크 영감님 이후
이렇게 어설프고 웃긴 마피아 대부는 실로 오랜만이다.
이런 악당들을 상대로 하는 퍼니셔이다 보니, 뭐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보인다.
<결국 퍼니셔편을 들어주는 띨빵한 FBI 요원들. 오른쪽의 버디안스키는 깨는 캐릭터 중 하나>
이번에는 퍼니셔가 그토록 강조하는 초특급 울트라 다이나믹 하드고어 액션을 살펴보자.
퍼니셔의 컨셉 자체가 무차별 무자비 살인 위주의 액션이다보니
이러한 연출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얼마나 더 하드고어하고 리얼하면서
다이나믹하느냐가 영화의 평가에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이미 1988년작 돌프 룬드그렌의 액션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었고,
2004년작 토마스 제인도 흠잡을 데 없는 액션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중년 남성이 펼치는 액션 느와르는 어떠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엽기황당이다.
마치 스티븐 시걸의 무뚝뚝한 액션과 쿠웬틴 타란티노의 엽기 하드고어가
짬뽕되어버린 느낌이랄까? 토마스 제인의 액션은 정말이지 리얼하다기 보다는
스티븐 시걸스러운 무언가 딱딱한 느낌이 진부하다.
시걸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어디 한번이라도 신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던가?
시걸한테 걸리기만 하면 초특급 슈퍼 악당도 간난아기가 되고 마는
일방적 개갈굼 액션이 레이 스티븐슨에게로 옮겨진 느낌이다.
게다가 아무리 전직 특수요원이라지만 수십명의 갱단이 총격전에서
단 1명에게 깔끔하게 쓰러지는 모습은 마치 과거 홍콩느와르의
대표적 총질 액션을 보여주는 듯하다.
주윤발이 쏘는 총은 눈감도 엎드려 쏴도 맞는데, 악당들이 쏘는 총은 서서쏴 정자세로
심호흡을 하고 쏴도 안맞는 황당무계 시츄에이션이 퍼니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게다가 무한 탄창도 빠지지 않는 설정. 대략 4~5개 정도의 무기를 달고
갱단을 처리하는 퍼니셔인데, 권총만 따지면 1개의 탄창당 대략 10발로 계산시
50발 정도 소모가 가능하다. 여기에 예비 탄창을 10개 정도
챙겼다고 해도 100발이 한계이다. 그렇다면 갱단 한 명 죽이는데
2~3발 정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영화에서 하는 짓은 그야말로 무차별 난사.
게다가 총맞아 죽어가는 떡실신 상태에도 불구하고 확인사살까지
해주시는 퍼니셔의 애프터 서비스는 그 많은 총알을 대체 어디서 수급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한다. 총기 자체는 아주 리얼하고 레이 스티븐슨도 총기 다루는 모습이
프로처럼 보이지만, 무제한 총알 자체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것 아니던가?
<어이, 목이 근질근질한데 내 목에 낀 생선가시좀 빼주겠나 친구?>
총격전도 문제이지만, 그 외의 격투씬은 더욱 퐝당하다.
킬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엽기 격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젖에 숟가락 비슷한 것을 관통시키지를 않나,
칼을 그대로 머리통에 쑤셔박지를 않나, 주먹으로 얼굴 치니 얼굴이 폭발하지 않나.
이거 무슨 북두의권도 아니고, 보고있자니 충격적인 액션이라기 보다는
B급 슬래셔 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연출 면에서도 많은 문제가 느껴진다.
몇몇 장면을 보다 보면 “어라?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맨 처음 퍼니셔가 등장하는 씬. 탁자 위에 올라서서 조명탄을 비추며
해골마크를 드러내는 장면은, 처음에는 “와우!! 연출 대박!!”이라며 기뻐했는데,
그 이후의 액션에서 그만 필자는 킬빌의 따사로운 추억을 느낄 수 있었다.
킬빌에서 오렌이 테이블 위로 쪼로록 달려가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이
퍼니셔에서도 똑같이 연출된 것이다. 정말 쪼로로 달려가서 영어발음
잘 안되는 마피아 영감님의 목을 댕강 잘라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표절의 대표 시퀀스.
이 외에도 야마카시를 패러디한 듯한 악당들의 건물옥상 날아다니기 장면이라던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360도 회전 총질이라던지 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참신함이 떨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연출.
이런 패러디도 웃긴데, 여기에 더 안습인 몇몇 장면은
악당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잔인하다기보다는 너무도 우습다는 것이다.
건물 옥상을 날아다니는 야마카시 타입 악당 중 한명의 사살 장면은
그야말로 대 안습. 공중에서 꾸에르보 3단 틀기를 선보이며 옆 건물로 점핑하여 날아가는 순간,
어디서 난데없이 날아오는 미사일에 맞아 터져죽고 만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못말리는 시리즈”식 연출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게다가 얼굴 잡고 돌리기만 하면
소리없이 인생 하직하시는 연출을 보면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원작과 달리 빈약한 몸매를 가리고 목숨부지하기 위해 해골마크없는 민무늬 방탄조끼를 입는다>
퍼니셔의 행동거지에도 퐝당한 요소는 수차례 찾아볼 수 있는데,
격투 중에 한 대 얻어맞아 비뚤어진 코를 제자리로 원상복귀 시키는 장면이 압권이다.
연필을 쑤셔 넣어 뚝!하고 제자리 찾아주시는 쎈쓰는
200% 진지한 표정의 퍼니셔의 얼굴과 도저히 매칭이 안된다.
한 마디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로 재평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조연들의 연기도 어설프다는 데서 안구가 자꾸만 축축해져 온다.
나름 비장한 시퀀스를 보여줘야 하는 장면에서 조연들의 연기가
억지같다는 느낌이 너무 피부로 느껴진다. 순간 이 영화는 저예산 쌈마이 영화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였다. 하여 감독을 찾아보니 렉시 알렉산더라는 놀랍게도
여성 감독이라는 것. 아무래도 정신상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차세대 B급 쌈마이 영화계의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7.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한번만 더 참아보자
그리고 앞서 설명한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퍼니셔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안 나온다.
즉, 어디서든 퍼니셔의 옛날 이야기는 듣고 와야 이야기가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속편 격으로 내는 것이다 보니 2004년작의 배경 설명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것 같다.
하지만 퍼니셔가 어떻게 해서 FBI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지, 마이크로칩하고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쏭달쏭이다.
원작에서 퍼니셔는 말 그대로 독고다이 인생이다. 마이크로칩만이 유일한
동료로서 그를 그림자처럼 도와줄 뿐이다.
FBI나 경찰에서도 퍼니셔는 일개 살인자일 뿐이다.
오죽하면 정의의 사도인 슈퍼 히어로들 조차도 퍼니셔와 대립했을 정도.
여기서 조금 우스운 부분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의 시대 설정이 모두 제각각이라
이를 하나로 묶어서 동시대에 등장시키다 보면 엉뚱한 전개가 나오곤 한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퍼니셔만 해도, 시대가 살짝 미래인 만큼 별의 별 첨단기기가 등장하는데,
퍼니셔는 여기서 어떤 비밀단체에 의한 협조를 받기도 한다.
이렇듯 단독 출연이 아닌 이상 뭐든 꼬이기 마련임을 명심하자.
어찌되었던 가슴팍에 새하얀 해골 마크를 보는 것만이라도 가슴 설레게 만드는 퍼니셔.
하지만 정작 가슴팍에 해골 나오는 장면은 단 2번 뿐이라는 데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찡하게 만드는 영화 퍼니셔.
이제는 늙어버린 중년 퍼니셔의 액기스 쪽쪽 빠진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후련함 보다는 무언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2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이 영화는,
앞으로 전개될 <어벤져스>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퍼니셔를 등장시킬 지에 대한
많은 궁금증과 걱정을 함께 안기고 있는 작품이다.
<진정한 퍼니셔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영화보다 만화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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