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 (Wall-E)
인간이 무심코 만들어 낸 창조물 중에는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고결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좀약이 그렇고, 치약이 그러하며, 스타킹이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으로부터 800년이라는 먼 미래에 도달했을 때
수백년 전에 만들어낸 자그마한 로봇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월트 디즈니의 픽사에서 만들어 낸 새로운CG 애니메이션 Wall-E는
인류학적인 주제를 재미있게 다룸과 동시에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는 걸작이다.
<영화의 영문버전 포스터. 오른쪽 상단의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1. 스토리 - 볼품없는 로봇이 선사하는 우주적 감동 드라마
Wall-E의 스토리는 이렇다.
지구가 엄청난 쓰레기로 뒤덮여버린 2100년 정도의 지구.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쓰레기를 처리하는 자동 로봇을 개발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대량생산하게 된 로봇이 Wall-E.
인류는 지구의 재건을 네모난 박스 모양의 로봇들에게 맡긴 채
초호화 거대 우주유람선인 액시엄호를 타고 우주로 떠난다.
5년 후 지구로 귀환할 것을 약속한 채.
그로부터 700년이 지난 미래.
수백년의 세월 동안 여전히 지구의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는 로봇은 단 한대.
바로 주인공 Wall-E다. (대량생간했기 때문에 어쨌든 누구나 Wall-E인 셈이다)
지구에 홀로 남겨진 Wall-E는 오늘도 어김없이 쓰레기를 수집해서 박스모양으로 압축한 다음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려 거대한 탑을 만들고 있다.
그의 유일한 생명체 친구라면 바퀴벌레처럼 생긴 버러지 한 마리.
벌레와 함께 생활하며 우습게도 신기한 물건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Wall-E는
커다란 컨테이너 안에서 살면서 인간에 버금가는 삶을 영위한다.
매일같이 비디오를 틀어 인류가 남긴 춤과 노래의 문화를 감상하고
로맨틱 영화를 보며 그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우주선.
우주선에서는 달걀 모양의 유선형 로봇이 나타난다.
잔뜩 호기심에 부풀은 Wall-E는 새로운 로봇에 관심을 느낀다.
하지만 무언가를 계속 찾기만 하는 유선형 로봇.
결국 레이저빔을 쏴대며 경계를 하던 유선형 로봇에게 무참히 당한 Wall-E.
하지만 무섭게 몰아닥치는 폭풍 덕에 Wall-E는 새로운 로봇과 친구가 된다.
비로소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주고 받으며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새로운 로봇의 이름은 "이브". Wall-E는 계속 "이바"라고 발음한다.
<차세대 유선형 로봇의 이브와 구세대 박스형 로봇 Wall-E의 역사적 만남>
Wall-E의 정성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로봇 이브.(알고보니 여성 로봇이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임무를 위해 구석구석을 뒤지던 이브는 Wall-E가 발견한 식물을 보자
식물을 자신의 몸통에 넣은 채 그대로 동면 상태에 빠진다.
오랜 시간을 동면에 빠진 이브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보살펴주는 Wall-E.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날아온 우주선이 이브를 데려가는 것을 보고
Wall-E도 혼신을 다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탄생 이후 최초로 우주로 나가게 된 Wall-E는
그 우주선이 자신이 비디오에서나 보던 액시엄호에 도달한 것을 알게 되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액시엄호 내부에는 새로운 기능의 다양한 로봇들과 함께
이제는 너무나도 게을러져 버린 인류가 공존하고 있다.
인류는 700년이라는 세월동안 우주선 안에서 극도의 편안한 생활을 한 나머지
비대해진 몸매와 짧아진 다리, 극도의 운동부족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 새로운 환경에서 Wall-E는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좌충우돌하는 과정 속에서 액시엄호가 식물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는 사실과
이를 막으려는 항해로봇 오토의 반란.
그리고 지구라는 자신들의 고향에 흠뻑 취해버린 뚱땡이 선장의 활약 등으로
우여곡절끝에 지구로 돌아가게 되는 액시엄 호.
하지만 치열한 투쟁 속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 Wall-E는
자신에게 그토록 정성을 쏟아 주었던 사랑을 깨닫게 된 이브의 노력에 의해
마침내 지구로 귀환하여 수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칩으로 갈아끼워버린 터라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Wall-E.
너무도 절망적인 슬픔에 이브는 마침내 영화에서나 봐오던 "연인끼리 손잡기"를 하고,
이에 전기 충격이 가해진 Wall-E는 마침내 기억이 돌아와감동의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지구로 귀환하게 된 인류는 새싹을 땅에 심으면서 지구 재건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Wall-E는 사람보다도 더 사람답게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2. Wall-E가 선사하는 존재론적 의의와 가치
영화에서 그리는 Wall-E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다.
비록 생긴 것은 단순한 박스형 기계에 불과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은
어느 인간보다도 더 인간답고 사랑스럽다.
특히 홀로 남은 지구에서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면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고독에 파묻히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끔찍할 정도로 외로운 환경에서도 희망과 용기의 가치를
전해주는 장엄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브를 만나게 되면서 더더욱 인간에 가깝게 변모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처음 이브를 보고 느끼게 된 감정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외로움을 타개해 줄 새로운 동료와의 만남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봐야 하겠다.
그러나 이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어느 덧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커져가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도 똑같지 않을까?
처음에는 관심으로 시작되는 감정이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커져가면서
세상에서 오직 단 하나의 존재만을 생각하게 되는 사랑으로 커져가는 것.
Wall-E도 그러했기 때문에, 필사의 힘으로 우주선에 매달려 이브를 따라간 것일지도.
<동면 상태에 빠진 이브에게 Wall-E가 주는 사랑은 그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Wall-E가 보여 준 사랑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그 목동과도 같은 순수한 사랑이다.
너무나도 맑고 순수하고 거대한 사랑.
그 사랑 앞에서 필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느 덧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버린 순수한 사랑에 대한
추억이자 갈망이자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Wall-E는 그 순수한 사랑의 대가로 오히려 이브를 곤경에 빠트리게 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Wall-E의 최후의 활약 덕에 이브의 임무는 마침내 달성하게 되고 만다.
그 결과로 인류는 무려 700년 만에 고향인 지구로 돌아가게 된 것.
여기서 Wall-E가 갖는 가치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기대 이상의 고결한 가치인 셈이다.
Wall-E가 처음에 액시엄 호에 탑승하게 되었을 때,
비록 사고의 연속으로 액시엄 호의 내부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지만
그 과정에서 인류는 우습게도 자신들이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
심지어는 다른 로봇에게도 질서와 규칙을 떠나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결국,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어가 최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낸 창조물에 오히려 인류에게 인간다움을 선사해 준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우주공간에서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한 Wall-E. 저 놀라운 그래픽을 보아라!>
#3. 디테일의 진일보
Wall-E는 컴퓨터 그래픽에 있어서도 하나의 신기원을 이루는 듯하다.
Wall-E를 비롯한 다양한 로봇들의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그리고 황폐해져버린 지구의 모습과, 우주의 신비로운 자태 또한
실사를 능가하는 최고의 비주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는 표정없고 대사조차 특별히 없는 로봇들의 움직을 통해
대사 그 이상의 감정과 메세지를 전달하는 연출력을 보고 있자면
필자가 눈물을 흘릴 정도임을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만화 중에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이 오로지 캐릭터의 행동으로만 메세지를 전달했던
<곤>이라는 공룡 만화가 생각난다.
그 만화를 비롯해 이 작품이 전해주는 의미는
인류가 문자가 없어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매일 태양열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Wall-E.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친환경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4. 내 인생 최고의 감동 CG 애니메이션
이 작품은 단순히 재미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어
환경오염이 초래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
그리고 순수하고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가치를 제시해 주고 있다.
Wall-E가 동면 상태에 빠진 이브에게 보여주던 순수한 사랑과
인류의 미래와 이브의 임무 달성을 위해 자신의 혼신을 다 바치는 희생 정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힘으로 다시 기억을 되살리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장면.
우습게도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이 펼치는 요절복통 스토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이러한 감동적인 요소로 인해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어느 순간 Wall-E처럼 쓸쓸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최대의 애니메이션을 뽑으라 한다면
이제는 Wall-E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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